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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밥을 뱉다

등록 2016-01-12 18:48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아기를 마주 앉히고 이유식을 먹인다. 오늘의 메뉴는 치즈 한 장, 대구 살과 야채를 넣어 끓인 죽이다. 뗄 수 없는 짝으로 바늘과 실, 볼트와 너트, 손과 장갑 같은 걸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에 최고의 짝은 이유식 뜬 수저와 아기 입이다. 수저가 근처에만 와도 아기는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린다. 삐악삐악. 어서 다음 맘마를 대령하지 못할까. 황급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수저를 옮기는 손은 자애롭다기보다는 공손하다고 해야 옳다. 그런데 오늘은 이 조그만 왕이 혀를 내밀어 이미 들어간 밥알을 내뱉는 거다. 아니, 응가도 아니고 왜 밥을 뱉냐. 아무리 아베가 싫어도 그렇지, 앞으로 먹고 뒤로 빼는 ‘불가역적인’ 순서를 왜 어기는 거냐. 설마 벌써 사춘기인 건가? 뭐든 고분고분하지는 않겠다는 뜻? 아니면 아빠가 가끔 술 먹고 하는 짓을 흉내 내는 건가? 그렇다면 벌써 중년을 예행연습하는 건데, 이건 아니지 않니? 아기가 뱉어놓은 밥알을 치우다가 깨달았다. 아, 이유식은 죽이었지. 이 아빠도 죽 싫어하는데. 죽은 흔히 회복식으로 이용된다. 그래선지 죽을 먹으면 괜히 몸이 아픈 것 같아서 싫다. 아기도 그래서 뱉은 건가? 노년의 삶은 살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이는 것? 치즈는 또 좋아해서 한 번도 뱉은 적이 없다. 그래 네게는 카메라 앞의 치즈 같은 삶만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지나면 김치로 옮아갈, 그런 삶이.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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