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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대명사의 탈출 / 김하수

등록 2015-11-15 18:56

‘나와 너’, ‘여기와 저기’와 같은 말을 대명사라고 한다. 대명사의 가장 큰 특징은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위치에 따라 말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나를 일컬을 때는 분명히 ‘나’였는데, 남이 나를 부를 때는 ‘너’가 된다. 또 ‘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실체는 그대로인데 누가 어디에서 나를 호출하느냐에 따라 어휘의 모습이 달라진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관계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와 ‘너’라는 대명사보다는 아예 이름을 말한다.

관계를 언어로 드러내는 것은 퍽 까다로운 일이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인칭에 따라 달라지는 그들의 동사가 얼마나 귀찮았던가. 그들의 언어는 자신과의 관계에 따라 동사의 성격을 다르게 본 것이다. 대명사가 인간의 관계를 드러낸다면 명사는 그 관계를 무표정하게 만든다. 그냥 ‘집’이라 하면 건축물로서의 ‘집’이다. 그러나 ‘우리 집’이라고 하면 ‘우리’의 소유 대상이거나 거주 공간이다.

이러한 대명사들이 그 ‘관계의 표지’를 품에 안은 채 명사의 구역으로 자꾸 탈출하고 있다. 몇 해 전에 ‘우리’라는 말을 특정 정당과 은행의 이름에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요기요’, ‘여기 어때’, ‘여기다’ 같은 대명사가 마치 명사인 듯이 응용프로그램(앱) 이름에 등장했다. 품사의 경계를 넘나들면 기능이 중복되게 마련이다. 심지어 지방의 어느 지역을 지나가다가 ‘거기’라는 모텔 이름도 본 적이 있다. “우리 ‘거기’ 갈까?” 하는 소박한 문장 안으로 모텔의 의미가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말의 성격이 슬슬 변하고 있다. 서로의 관계를 보여 주는 대명사가 에일리언처럼 명사(상품명)의 몸에 들어가 소비자들을 낚아채려 한다. 소비자들은 대명사 때문에 그 상품과 자신이 유의미한 관계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원래 소비자와 관계 깊던 대명사가 상품의 진영으로 넘어가 버리고 있는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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