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교과서, 그것도 국정교과서 문제를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교과서를 누가 편찬하느냐의 문제가 일차적 사안이 된 것이 참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편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이 직접 집필할 상황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장관이 직접 팔을 걷어붙일 일도 아니다. 결국은 전공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국가가 한다는 일들은 구체적으로 보면 결국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일이다. 단지 ‘국가의 이름으로’ 낼 뿐이다.
국가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면 국가기관이나 정권, 정파가 개입할 기회가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관료체제나 정치세력들은 국가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으려 할 것이다. 민족이나 국민의 이름을 이용해도 되지만 그것은 좀 부담스러운 점이 많다. 국가라는 존재를 내밀어야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통 국민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고로 역사는 국가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국가는 역사에 대해서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국가가 역사에 대해 무언가 말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특정 정치세력이 무언가 자신들의 말을 역사에 끼워 넣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 쉽다. 더구나 역사 문제에 대해 꺼림칙한 면이 많은 정권일수록 이런 일에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자칫 역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참에 모든 사람이 ‘국가’의 참뜻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국가는 매우 추상적인 관념이다. 국가가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려면 권력을 쥔 집단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국민’들 앞에서 관철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국민이 진정 국가의 주인이 되려면 부단히 목소리를 내는 길밖에 없다. 침묵하면 체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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