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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사라진 아빠들 / 김하수

등록 2015-10-18 19:18

남성과 여성은 서로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이 근대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지만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에 그 뜻을 구현해내지 못한 그늘진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그동안 여성의 경제활동은 상대적으로 큰 진전을 이루어 직업 세계에서의 성적인 분업은 많이 극복이 된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출산과 육아 영역에서는 여성들 혼자서 짊어진 짐의 크기가 태산 같기만 하다.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미혼모’라는 단어가 있다. 1960년대의 국어사전에는 없던 말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전에 올랐다. 신문에는 1970년대 초에 등장했다. ‘미혼모’는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아기 엄마’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 모두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엄청난 뜻이 담겨 있다. 즉 엄마와 아기가 모두 정당성이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불법적인 임신과 출산을 불러온 공동책임자인 아빠를 가리키는 단어는 국어사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사전에 그러한 단어가 없다는 것은 사전 편찬자들의 실수가 아니다. 사전 편찬자는 아무도 쓰지 않는 단어는 사전에 절대로 싣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런 단어를 만들어내지도 않았던 것은 남성의 신원을 철저하게 감추어 주는 일에 사실상 동참했기 때문이다. 곧 ‘미혼모’라는 단어가 나타난 이후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우리 모두 사라진 아빠들을 전혀 ‘호출’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법률과 어긋난 관계’의 책임은 오로지 미혼모들에게 돌아갔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혼자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사무치게 서러웠을까? 게다가 태어난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이 삶의 첫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기 쉬웠을 것이다. 이젠 공동책임자인 아빠를 찾아야 한다. 그들을 찾으려면 호출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하다. 그 단어로 법조문을 만들고, 구체적인 아빠로서의 공동책임을 묻고, 자신의 도덕적 의무를 다하게 해야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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