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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교과서 너머의 전쟁 / 오혜진

등록 2015-10-18 19:16

‘역사’는 국가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대상일까. 불과 5년짜리 정부가 지금까지 인민의 공통감각과 자기정체성을 형성해온 역사를 자의적으로 새로 쓰고, 민망하게도 이를 ‘올바른 교과서’라 이름 붙이는 일이 가능할까.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지난 정부가 모두의 유산인 이 나라 산하를 자신들의 배 불리는 데 써먹고 정치적 자원으로 삼았듯, 이 정부가 ‘역사’를 마치 사재인 양 배타적 독점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다양한 주체들의 다양한 역사를 통해 역사적 진실이 구성된다는 ‘다원주의적 역사관’에 의해 오랫동안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된 인식론이다. 국정 교과서는 ‘역사를 쓰고 해석할 수 있는 주체’를 오직 ‘국가 자신’으로만 설정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반민중적·반민주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편, 국정 교과서 기획이 ‘일베’를 양산하는 역사 왜곡 프로젝트가 될 것임을 우려하는 논의도 있다. 국정 교과서의 진의가 친일과 식민지배, 5·16 쿠데타, 유신의 폭력 같은 역사를 근대화와 혁명, 경제성장 등의 미사여구로 덮는 데 있다는 점, 그리하여 그 추한 과거가 현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과 도전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지평을 꼼꼼하게 단속하는 데 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이다. 이 기획이 독재자의 딸과 그 가신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충효정신의 발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상이다. ‘대한민국 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거나, ‘현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면서 이 사태를 ‘역사전쟁’이라고 호전적으로 호명한 새누리당의 언술과 그 함의는 결코 간단치 않다. 그들은 자신의 극우적 세계관에 찬동하지 않는 이들을 무조건 ‘좌파,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몰아온 그간의 전술을 그 어느 때보다도 공세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극우적 세계관을 사회구성원들의 사상적 기본값으로 탑재시키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주조하고자 하는 세계는 자본주의적 경쟁체제에서 승자독식하는 것을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다 같이 ‘상식’이자 ‘정의’로 간주하는 평평한 세계다. 정부가 젊은 세대를 겨냥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국정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데, 그에 의하면 ‘올바른 역사 교과서’란 “자긍심을 높이는 교과서”로서 “외침과 국난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자랑스러운 역사”라 한다.

이 해괴한 ‘역사전쟁’에서 ‘올바른’ 싸움법은 무엇일까? 정부가 말하는 ‘균형 잡힌 역사’, ‘깨끗하고 공정한 역사’란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어차피 역사 서술은 누군가의 입장과 당파성에 근거한 헤게모니 싸움이며 정치적인 행위다. 더구나 굳이 국정 교과서가 아니라도 ‘제도화된 역사’는 항상 국가주의와 일국적 국민주의, 애국주의 등에 침윤될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국사’라는 개념 자체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제도 밖에서 대안역사 및 대항역사의 서술 및 개발을 도모해야 한다는 논의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교과서’ 너머로 행해지는 이 매카시즘과 이데올로기 조작에 어떻게 맞설까.

오혜진 근현대문화 연구자
오혜진 근현대문화 연구자
이 와중에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속속 전해진다. 무엇보다 국정 교과서의 실질적인 영향을 받을 고등학생들의 ‘국정화 반대 선언’이 눈에 띈다. 이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한 ‘교육권’과 ‘참정권’, ‘민주주의’의 개념 역시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리라.

오혜진 근현대문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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