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로서의 한글날이 또 지나갔다. 국경일이자 공휴일로는 세 번째였다. 한글날은 국경일로 도대체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왜 그냥 기념일이나 명절이 아니라 국경일이라는 특수한 가치를 드러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내어 주고 있는가?
세계 각국의 국경일은 거의 대부분이 건국, 독립, 해방, 승전, 혁명, 통일 등을 기념한다. 주로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주제와 연계되어 있다. ‘힘과 권력’의 문제인 것이다. 그와는 달리 문자의 탄생을 기리는 것은 ‘지식과 배움’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깨우침과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우리의 한글날이 지닌, 다른 종류의 국경일과 분명히 구별되는 가치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계층이나 직업의 한계를 넘어 온갖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담을 수 있는 훌륭한 문자를 가진 것을 경축하는 날이다. 이것은 진정 크나큰 축복이다. 또 그러한 가치를 국가의 이름으로 경축한다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그러나 문자만 훌륭하면 뭐하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한국인이 책을 읽는 양이 무척 낮은 편이라는 것이다. 공식 통계로는 연간 성인 1인당 독서량이 대략 아홉 권 정도라고 한다. 한글을 자랑하면서 우리는 자주 한자와 비교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성인들은 한 해에 30권가량, 일본은 70권가량 책을 읽는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하위라고 한다. 어리석은 백성한테 최고의 문자가 생겼지만 아직도 여전히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독서는 길게 연속되는 사건이나 상황을 하나의 줄거리 안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정신적 계기’가 주어진다. 그래서 독서는 입시나 고시 등의 준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성숙을 위해 더욱더 중요하다. 문자의 탄생을 경하하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그 문자의 사용을 기뻐하고 즐기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만고의 이익을 취하는 길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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