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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다듬고 더듬고

등록 2015-10-06 18:31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국립국어원에서 올린 트위트를 보았다. “우리말 다듬기: ‘황금 독신 여성’은 ‘골드미스’를 다듬은 말입니다. ‘재무 관리에 민감한 계층으로 황금 독신 여성들이 주목받고 있다’처럼 다듬은 말 ‘황금 독신 여성’을 쓰시기 바랍니다.” 다듬은 게 아니라 더듬은 말 같다. 그럼 ‘황금박쥐’는 ‘골드 솔로 배트맨’인가? ‘골드러시’는 ‘황금 독신 북적북적’이고? 네티즌들도 이런 댓글을 달았다. “금숙녀는 어때요?” “차라리 금박독신여성이라고 하세요.” “벌 만큼 번다고 제 잘난 맛에 시집도 못 간 여성이라 이건가요?” “겉만 번지르르하면 도금독신여성인가요?” “그런데 왜 다 한자죠?” 애당초 ‘올드미스’를 뒤틀고 꼬아서 만든 말을 다듬겠다는 착상부터가 말이 안 되지만, 말을 만들어 제공하면 언중이 그 말을 쓸 것이라는 전제도 잘못이다. 말이란 언중의 발화 속에서만 생명력을 갖는 것인데, 저런 박제를 제공하겠다니? 저것은 계몽의 결과가 아니라 무지몽매의 결과다. 그런데 웃다가 등골이 서늘해진다. 모든 지배의 궁극적인 완성은 피지배자의 말을 빼앗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증언하듯 말을 강탈하면 그 말이 있을 때에만 가능했던 비판적 사고가 강탈된다. 국립국어원은 엉뚱한 말을 더듬고 교육부는 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한다. 내게는 그 둘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야당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해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직을 유지하는 세상이다. 휴, 그 양반, 골드미스터였구나. 황금 독재 남성 말이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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