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가 윌리엄 터너의 작품에는 일몰이나 일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화면 가득 파란색이 아닌 노란색, 주황색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 바닐라색 하늘을 연출한 것은 화산이었다. 1815년 4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4300미터였던 산이 2851미터로 낮아졌다. 주변에 살던 주민 1만2000여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화산재는 성층권까지 올라가 태양빛을 차단해서 이듬해를 ‘여름 없는 해’로 만들었다. 지구 평균기온이 4도 가까이 내려가자 농사가 되지 않아 질병과 굶주림이 만연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레만 호수로 여름휴가를 왔던 사람들이 험악한 날씨 탓에 방안에 틀어박혀 주고받은 음산한 이야기가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뭉크의 <절규>에서 보이는 핏빛 하늘 역시 1883년 3만6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크라카타우(크라카토아) 화산 폭발로 인한 석양이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하늘이 실은 말세의 징조였던 셈이다. 최근 아름다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노사정 대타협이 이루어졌다. 해고가 훨씬 쉬워졌단다. 청년희망펀드가 출범했다. 강제사항은 분명 아닌데 계약직이나 인턴, 청원경찰까지 가입해야 한단다. 군 장병에게는 특별휴가와 간식이 ‘하사’되었다. 대신 비누, 칫솔, 치약, 휴지, 면도칼, 구두약 등은 개인이 사야 한단다. 기차표 할인도 없어졌다. 빛나는 하늘 아래 자살률 1위로 신음하는 나라가 있다. 하긴, ‘아! 대한민국’이 유행하던 시절도 광주민주화운동 2년 뒤였다.
권혁웅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