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때문에 광주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친척도 친구도 없는 곳이어서 밤이 무료했다. 혼자 ‘센치’해지고 싶어서 동네 바에 갔다. 칵테일 한잔 시켜놓고 구석 자리에서 시작 메모를 끼적이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홀에 와서 마시라고 강권하던 아가씨가 기어이 와서는 아는 척을 했다. “혼자 사시나 봐요. 뭐하세요? 어머, 시 쓰세요?” 마지막 질문에 담긴 뜻은 이런 것이었다. 여기 천연기념물이 있네, 모태솔로가 분명해, 불쌍해, 술도 한잔밖에 안 시켰잖아? 결국 그 잔도 남겨두고 나왔다. 요즘은 혼자 밥 먹고 술 마시는 문화가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외로움이란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하는데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양말이나 장갑처럼 둘을 하나로 세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어서 하나가 되지 못하는 상태’가 외로움이다. 그런데 바늘 옆에 놓인 못처럼 굳이 실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바늘이 아니어서 구멍 따위 없다고. 나는 공허하지 않아. 황동규 시인이 이런 감정에 홀로움이란 멋진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이 말, 홀로 운다는 뜻 같다. 사실 혼밥, 혼술이 유행하게 된 것도 회식, 연애에 드는 비용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찾아낸 라이프스타일 아닌가? 안됐다고 할 건 아니지만 무턱대고 좋아하기도 어렵다. 오래전인데도 두고 온 그 칵테일이 이따금 생각난다. 홀로 있었을 그 잔이. 내가 무슨 시를 쓰고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외짝 장갑의 심정 같은, 센치한 시였던 것 같다.
권혁웅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