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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여반장(如反掌)이라,

등록 2015-09-08 18:30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아기가 드디어 몸을 뒤집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부침개였다. 한 번 뒤집는 데 꼬박 5개월이 걸렸으니.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 같기도 하다. 머리가 크고 배냇머리가 빠지기 시작해서만은 아니다. 모아이의 키는 3~10미터, 무게는 20~90톤이 나간다. 저걸 어떻게 옮겼을까? 옆으로 한 번 굴리는 데만도 엄청난 힘이 들었을 텐데. 5개월 걸려 요 밖으로 몸을 굴려 나왔으니 아기의 무게를 모아이에 빗대는 것도 틀린 일은 아니겠다. 그런데 한 번 몸을 뒤집고 나더니,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시도 때도 없이 뒤집는다. 손바닥처럼 누워 있다가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손등을 보여주는 것처럼 뒤집는다. 그저께는 그렇게 뒤집다가 멈추어서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잤다고 한다. 약속을 쉽게 어길 때 손바닥 뒤집듯(=여반장) 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바꿀 때 매번 등장하는 말이 여반장이다. 여반장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5개월 걸려서 정성껏, 온 힘을 다해 뒤집을 때 쓰는 말이다. 역발산기개세다. 역도 선수가 인상, 용상 경기를 할 때 인상을 쓰고 용을 쓰듯 그렇게 뒤집는 것이다. 어제는 옆으로 누운 아기를 마주보고 누웠더니, 아기가 손을 내밀어 아빠 얼굴을 만지고 두들기고 끌어당겼다. 입안에 넣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얼굴이었다. 그랬구나, 아빠 모아이와 아기 모아이가 5개월 걸려서 드디어 서로를 보고 누웠구나.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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