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집단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면 그들은 무언가의 가치 매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학생, 노인, 주부, 외국인 등은 이렇게 특칭화되면서 동시에 그들에 대한 가치 판단이 함축된다.
예를 들어 “주부 도박단 검거”라는 기사 제목은 단순히 ‘주부’들을 가리키는 기능만을 하지는 않는다. 주부들이 웬 도박이냐 하는 비난이 깔려 있다. 굳이 주부만이 도박을 삼가야 할 이유는 없다. 모두 다 삼가야 할 것이 도박이다.
더 나아가 ‘대학생 절도범’이라든지 ‘60대 노인 내연녀 폭행’, ‘여대생 포함한 해외 원정 성매매’ 등의 문구는 대학생, 노인, 여대생들을 특칭화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다른 집단에 비해 좀 ‘불공정하게’ 깐깐한 잣대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대개는 사회적으로 따돌림이나 질시를 당하는 사람들이다.
시각을 돌려 또 다른 집단을 살펴보자. 한국을 찾는 관광객 가운데 유독 중국인 관광객에게는 ‘요우커(유커)’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반면에 일본이나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한테 ‘간코캬쿠’라든지 ‘투어리스트’라는 별칭을 붙였던 일은 없었다.
우리 언론 보도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주로 ‘큰손’으로 보도하는 악습이 있다. 결국 ‘유커’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의 벌거벗은 욕망’을 드러낸 말이다. 관광을 오로지 손님 호주머니에 눈독 들이는 얄팍한 업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메르스 이후에 어려움이 많던 관광사업에 다시 외국인 손님들이 온다는데 이런 계기에 더 교양 있는 지칭을 사용했으면 한다. 모든 관광객을 평등하게 일컫고 그들이 와서 쇼핑이나 자연환경만이 아니라 정중한 문화적 대접도 누리게 하자. 좋은 상품과 경치는 이 세계에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러나 마음으로 느끼는 문화적 감흥은 아무 데서나 받는 선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한 걸음 더 발전한 보도 용어를 사용했으면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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