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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액자 이야기

등록 2015-09-01 18:36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모임에서 엠티를 다녀왔다. 분기에 한 번씩 있는 행사다. 회원들이 일을 나눠서 추천 여행지를 검색하고 적당한 숙소를 찾아서 예약하고 미리 장을 보고 회비를 걷고 선발대와 후발대를 나누어 차량을 배치하고 두세 시간 걸려서 엠티 장소로 간다. 이번 여행에서는 태안의 해안가 펜션에 갔다. 창밖으로 노을과 해변이 근사했다. 그런데 매번 그렇지만 도착해서 하는 일은 장소와 무관한 일이다. 서둘러 고기를 구워 먹고 무서운 속도로 술을 마신다. 설악산에 갔을 때에도, 대성리에 갔을 때에도, 주문진에 갔을 때에도 그랬다. 하다못해 주변을 산책한 적도 없다. 새벽까지 자리가 이어지니까 기상 시간도 늦다. 아침에 하는 일이라고는 해장국을 찾는 것뿐이다. 그리고는 서둘러 귀갓길에 오른다. 누군가 한탄했다. 술꾼의 엠티란 게 그렇지.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없어. 창밖이 산이냐 강이냐 바다냐 차이만 있을 뿐 매번 똑같아. 그러니까 우리는 매번 똑같은 자리에서 논 셈이지. 동네에서 방 잡고 노는 거랑 무슨 차이야. 미안해하면서 내가 대답했다. 조금 달라. 액자를 갈아 끼웠잖아? 우리는 산에서도 마시고 강에서도 마시고 바닷가에서도 마셨다고. 누군가와 특별한 자리를 갖는 것은 서로의 액자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는 내 바라봄의 대상이 되고 나는 그의 영역에 포함된다. 우리는 특별한 스튜디오에서 근사한 앨범을 찍은 거다. 산이나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거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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