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예로부터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하면 으레 하늘이 벌을 내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것을 재난 혹은 재앙이라고 했다. 그러한 말 앞에서 우리는 힘이 쪽 빠지게 마련이다. 그 까닭은 피해는 엄청난데 그 가해자가 없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 다 운수소관 아니면 하늘의 뜻이라고 하며 망연자실하게 된다.
사람들의 지식이 축적되면서 대부분의 재난이 자연의 법칙을 사람들이 충분히 알지 못한 까닭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의 잘못이거나 예방을 소홀히 한 탓임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요즘은 신문 지면에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표현이 적잖게 나타난다. 하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이 저지른 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비판적인 표현에도 여전히 숨어 있는 책임과 원인을 찾아내려 하지 않고 체념하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이 일으킨 사고를 ‘재난’이라는 관념에 연동시킨 것이 그것이다. 돌이켜보면 지진이나 해일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재난은 사실 누군가가 그 원인을 만든 경우가 많다. 붕괴 사고, 화재 사고, 폭발 사고 등은 여지없이 누군가의 실수나 무책임 때문에 일어났다. 심지어 산불이나 돌림병의 확산도 사람 탓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곧 재난이 아니라 사고인 셈이다. 그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당연히 범죄자와 책임자가 있게 마련이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말이 사태의 인과관계를 깨달은 의식의 발전을 보여주듯이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자연의 직접적인 도발이 아니라면 모든 것은 재난이 아닌 사고다. 그리고 책임자와 가해자가 ‘복잡한 구조’ 속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들을 찾아내서 책임을 묻는 일이 앞으로 더욱 ‘안전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제는 “재난이 아니라 범죄”라는 시각으로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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