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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휴전선 뱃놀이

등록 2015-08-23 18:36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팔순을 맞은 어머님을 모시고 규슈에 갔다. 관광 일정 중에는 야나가와 시에서의 뱃놀이(‘가와쿠다리’라 부른단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야나가와는 일본의 베네치아(베니스)라 불린다. 시 전체 면적의 12%, 총연장 470킬로미터에 이르는 수로가 시 전체를 종횡으로 어지럽게 가로지른다. 처음에는 갯벌이었던 지역이 거주지로 바뀌면서 배수로 구실을 하는 격자형 물길을 많이 냈다고 한다. 하지만 야나가와 시가 지금의 수향(水鄕)이 된 것은 에도시대의 영주 다나카 요시마사 덕분이다. 그는 시 바깥을 흐르는 강물을 끌어들여 현재의 복잡한 수로를 건설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 주변에 복잡하게 파놓은 해자가 지금의 뱃길로 변한 것이다. 조그만 배를 타고 길지 않은 유람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풍광의 멋스러움에 감탄했지만, 내가 본 것은 470킬로미터(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지역이었다고 한다)에 이르는 두려움이었다. 조상의 공포가 자손의 관광 상품이 된 셈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니 휴전선 북한 포격 소식이 속보로 뜬다. 전쟁 불사, 최후통첩, 참혹한 대가를 치를 것, 준전시상황, 최고경계태세, 주민 대피령 같은 말이 연이어 헤드라인에 올라온다. 그런데 의외로 전쟁 걱정을 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겁박과 위협이 워낙 잦아서일까? 휴전선은 길이 250킬로미터에 이른다. 250킬로미터에 이르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 관광 상품이 되어 남북 사이를 오가고 있다. 끔찍한 상품이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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