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한다는 것은 손상된 자기정당성을 말하기를 통해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사과하는 사람이 자기가 잘했다는 말인지 잘못했다는 말인지 모를 소리를 하고, 이리저리 둘러대거나 남의 말 하듯이 한다면 자기정당성을 회복할 수가 없다. 참된 사과의 표현은 뉘우치는 자에게는 잘못을 면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사회윤리 척도를 재확인하면서 서로의 유대관계를 회복시킨다. 또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매우 유용하다.
종종 이런저런 큰 사건이 터졌을 때 관계된 책임자 혹은 공직자들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그들을 공연히 망신 주자는 것이 아니다. 이왕 터진 사건을 마무리하는 기회에 우리 사회윤리의 기준과 내부적인 유대관계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난날의 어두웠던 부분을 드러내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함으로써 다시는 과거가 반복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20세기의 양차 대전은 참혹한 역사적 비극이었기 때문에 그 시기에 각자가 무엇을 했는지를 잘 새겨 두고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이것은 남을 지배했던 자들이나 지배당했던 자들 모두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공동 행위이다.
사과를 하려면 아주 철저히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재론의 여지가 없다. 자존심 살린다고 일부러 사과를 엉성하게 하거나 희화화해 버리면 훗날 똑같은 짓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기 마련이다. 말을 바르게 하라는 것은 틀리지 않게 하라는 뜻도 있지만 옳은 태도로 말하라는 뜻도 있다.
사과를 받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다. 우물우물 넘어가는 사과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지나가 버린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그것은 자존심이 없는 행위인 동시에 그러한 책임 회피에 동조하거나 또 그들과 공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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