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중요한 뜻이 만들어질 것 같은데 유독 ‘국민 정서’라는 말은 그렇지 못하다. 이 말은 국민의 비합리적인 감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릇된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정을 저지른 기업인들의 사면을 비판하면 국민 정서 때문에 경제 활성화가 잘 안된다고 하며 마치 국민들이 질투가 나서 사면을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는 데 쓰인다.
또 정부가 부담스러워하는 일은 적당히 시간만 끌다가 역시 ‘국민 정서’를 핑계대면서 뭉개기도 한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 이런 면이 나타난다. 야당도 여당의 정책을 공격할 때 명분이 마땅치 않으면 쉽사리 ‘국민 정서’라는 말의 뒤에 숨어버린다. 생소하고 낯선 성 소수자 축제 등에 대해서 아직 ‘국민 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들이다. 국민 정서는 참으로 복잡하다.
사람의 정서는 환경과 자극에 따라 부단히 변한다. 그러한 정서에 모든 공공 업무를 맞춘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더구나 국민이 품는 정서는 딱 한 가지라고 할 수도 없고 복합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은 ‘정서’가 아니라 ‘의견’으로 받아들여 의사 결정을 하게 해야 한다.
의견으로 받아들여 논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별 의미가 없는 정서’라고 내뱉는 것은 국민의 의견을 모욕하고 빈정거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민의 ‘공적인 의견’을 ‘사적인 정서’로 왜곡하는 짓이다. 국민 정서니 떼법이니 하는 말이 쓰이는 문맥은 그렇기 때문에 반국민적이며, 옳지 못한 술수가 있다.
공공 영역에서 옳고 그름을, 책임의 소재를 밝히는 공공 언어는 그 사회적 의미와 용도가 분명해야 한다. ‘국민 정서’라는 말처럼 아무렇게나 필요에 따라 엿가락처럼 임의로 쓰이는 언어는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각별히 삼가야 할 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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