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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O의 이야기

등록 2015-07-28 18:28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아기가 자는 모습만큼 평화로운 장면은 많지 않다. 가끔 신장개업한 가게 앞 풍선인간처럼 두 손을 파닥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부드럽다. 꿈에서 하늘을 날고 있구나 싶다. 그런데 깰 때는 좀 다르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화내는 것 같기도 한 신음소리를 낸다. 자기 몸을 제 맘대로 하지 못하는 이의 힘겨움이 찡그린 표정에 묻어난다. 그러다 힘들게 깨어 엄마나 아빠를 발견하면 아기는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오늘은 아기가 눈을 뜨더니 아빠를 보고 방싯 웃었다. 그러고는 동그랗게 입술을 모아 정확하게 이 소리를 냈다. “오.” 놀라워라, 아기는 어제 아빠에게 안겨서 거울 앞에서 연습했던 그 소리를 기억해낸 것이다. 어제는 흘러간 과거이며 잠은 망각에 잠기는 일이고 밤은 모든 형체가 풀어진 때다. 아기는 혼자 힘으로 현재와 과거를 잇고, 망각 속에서 기억 하나를 찾아냈으며, 흩어졌던 형체를 자신의 힘으로 재조립해냈다. 현재가 아닌 시간, 망각의 시간, 형체를 잃은 시간은 영원의 시간이자 저승의 시간이다. 아기는 잠에서 깰 때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이승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그래서 저승여행을 해낸 이들의 성이 모두 오씨인 건가? 오르페우스, 오디세우스, 오시리스, 오구(바리데기)처럼? 아기가 발음한 첫 모음은 “아”였다. 아앙, 아이, 아인. “아”가 평면적인 현재라면 “오”는 깊이와 높이를 가진 현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아기는 몸을 일으켜 그 높이를 몸으로 구현하겠지. 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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