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표준어 원칙에는 ‘서울말’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바로 서울말인지 명확한 정의나 해석이 달려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울말이 아니면 모두 사투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쉽다. 표준어 사용의 근본 취지가 모든 사용자들의 편의와 언어적 공감대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지나치게 서울 사람들에게 특권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서울말임에도 표준어가 못 된 경우도 있고, 시골말인데도 표준어나 다름없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각 지방의 특유한 토산품이나 음식 또는 동식물의 이름 등은 불가피하게 표준어와 사투리의 경계선을 넘어서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유용한 의미를 가진 방언 어휘들은 너무 주눅 들 필요 없이 당당히 사용할 수도 있는 근거도 마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농촌에 가면 ‘둠벙’이라는 것이 있다. 논밭 근처에다가 물을 모아놓은 우묵한 곳인데 간이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 환경을 주제로 하는 영상물을 보면 생태계의 오아시스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사물에 엄밀하게 해당하는 서울말은 찾을 수가 없다. 사전을 보면 ‘둠벙’을 그냥 ‘웅덩이의 방언’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중심부 아닌 지방, 도시가 아닌 농촌이 가진 역동적인 생태계를 메마르고 협소한 도시의 언어로 표현하자니 어쩔 수 없이 웅덩이라는 맥 빠진 말로 나타내게 되었다. 도시에서도 어린이 생태 교육을 위해서라도 이젠 ‘도시 둠벙’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판이다.
표준어가 진정 표준이 되려면 풍부한 형태와 의미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표준어는 근대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서울 중심의 기준을 가지게 되었지만 더 풍부한 지혜와 감성을 품기 위해서는 방언에 대한 문호개방이 더욱 필요하다. 농촌의 삶이 도시에서보다 더 슬기로울 가능성이 높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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