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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저 푸른 무인도에

등록 2015-07-21 18:22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홍수 얘기는 전세계에 퍼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홍수 신화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큰물이 져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남매 두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가만있자니 인류가 사라질 테고 자손을 남기자니 인륜을 어기는 일이라 고민이 많았다. 남매가 하늘의 뜻을 묻기로 하고 마주 선 산봉우리에 올라가 누이는 암망(맷돌의 아래쪽)을 굴리고, 오라비는 수망(맷돌의 위쪽)을 굴렸다. 두 돌이 골짜기에서 만나 포개졌다. 그제야 남매는 하늘의 뜻을 깨닫고 결혼을 했다. 맷돌에 담긴 의미가 제법 해학적이다. 나는 홍수, 인류 멸망, 둘만 남음, 신인류의 탄생…… 얘기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사랑에 빠진 이는 사랑하는 그 사람과만 사는 세상을 흔히 상상한다. 처음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그 사람밖에 없으니까. 둘만 있으면 삼각관계도 최저임금도 일부다처나 일처다부도 없을 텐데. 그러니까 너는 나의 전부야. 둘이 오누이인 건 인륜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가깝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로빈슨 크루소는 참 불쌍한 사람이다. 무인도에서 내내 혼자 살다가 그는 처음 만난 사람을 하인으로 삼았다. 그는 사귄다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나아가 그는 왜 자신이 무인도에 남았는지, 무인도가 왜 홍수 뒤의 세상과 같은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남진에게서 배워야 했다. 저 푸른 무인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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