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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 운명과 팔자

등록 2015-06-16 18:48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1악장 첫머리를 모스부호로 읽으면 v다. 단단단장(···─)이 알파벳 v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때 영국과 독일 방송 모두 이 음악을 시그널로 썼다. v가 승리(victory)를 뜻한다고 생각해서 서로가 자기들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연합군이 승리자가 되었으므로 독일군은 희생자(victim)가 되었다. 지금은 조작된 말이라고 의심을 받고 있지만, 오랫동안 베토벤 스스로가 이 교향곡에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저 말에 따른다면 운명의 직업은 택배원이다. 노크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주었더니 운명이 이편에는 승리를, 저편에는 패배를 배달하고 갔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흔히 “너는 내 운명이야”라고 고백한다. 운명적인 만남이라 이거다. 이별하고 나면 그 운명은 팔자로 변한다. “그렇게 좋아 못 살더니 왜 헤어졌어?” “몰라. 아이고, 내 팔자야.”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운명의 택배가 도착했다. 재작년에는 국정원 댓글사건과 공공기관 민영화로 골머리를 썩더니, 작년에는 세월호, 올해는 메르스다. 분노 다음에 비통, 비통 다음에 공포다. 이것은 운명인가, 팔자인가? <운명>은 남의 나라 것이니 우리를 응원하는 말로 바꿔보자. 337박수는 어떨까? 모스부호로 바꾸면 이렇다. 단단장(··─) 단단장(··─) 단단단단(····) 단단장(··─). 알파벳으로 바꾸면 u u hu가 된다. 옮겨 쓰면 이렇다. ‘ㅠㅠ휴~’ 눈물과 한숨이로구나. 2년 반 남았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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