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실학자들이 깨친 것 하나가 ‘중국이 세상의 가운데가 아니구나!’ 하는 것이었다. 지구의를 돌려 보면 이 세상에 가운데가 아닌 곳이 없다. 좀 쑥스럽지만 우리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한때 우리도 이런저런 분야의 ‘허브’를 해보겠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중심을 뜻하는 듯한 말이 하나 있다. ‘서양’이라는 말이다. ‘동양’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고, 무언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느끼게 한다. 그에 비해 ‘동양’은 종종 신비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지만 초라하거나 넉넉지 못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세상은 ‘동쪽’과 ‘서쪽’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쪽도 있고 북쪽도 있으며 어떤 중간 지대도 가능하다. 그래서 동양이라는 말에 중동 지방이 들어가는지는 좀 자신이 없고, 서양이라는 말에 아프리카가 포함되는지 확신이 안 선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말은 ‘서세동점’의 시기에 형성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세를 드러낸다. 서유럽에 밀리는 아시아 지역을 대충 ‘동양’이라고 한 것이고 열강이라는 이름으로 들이닥친 그들을 모두 ‘서양’이라고 단순화했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졌다. 동양이 옛날처럼 그리 만만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서양의 상당 지역이 궁색해지기도 했다. 동서양을 걸쳐 있는 러시아도 있고, 아프리카와 중남미도 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우리 동쪽에 있지 않은가? 러시아가 서양이라면 서양은 사실상 두만강 건너편이 아닌가?
동양을 아시아로 해석해도 모든 아시아인들이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언어적으로는 벵갈어와 그 서쪽의 언어들은 유럽계이다. 이제 동양과 서양이라는 단순한 말로는 세계의 모습을 제대로 나타낼 수가 없다. 이런 말로는 지난 시기의 실학자들보다 세상을 더 정확하게 보기 어렵다. 이제는 하루속히 옛말 사전에 밀어 넣어야 할 단어들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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