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나의 학습권은 우월한가 / 희정

등록 2015-05-31 18:52

몇 해 전, 모교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세웠다. 졸업생임에도 학교를 곧잘 드나들던 나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문제는 그 후로 학교 가는 일이 피곤해졌다는 것. 교내에 인사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청소노동자들은 어디든 있었다. 도서관에도, 매점에도, 화장실에도. 좋은 인사도 한두번이지. 이렇게 많았었나.

많았다. 그런데 몰랐다. 재학 기간, 이들의 존재를 몰랐다. <빵과 장미>라는 영화를 보며 멕시코 출신 청소노동자들을 ‘투명인간’이라고 한 대사에 목이 메어놓고, 정작 내 옆에 있는 투명인간은 생각 못했다. 누군가 늘 쓸고 닦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보고 나니 인사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운동은 ‘여기 사람이 있다’부터 시작했다.

노동조합을 세운 청소노동자들이 법적인 쟁의권을 가지고 싸우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일부 대학생들이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로 인해 ‘학습권’을 침해받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동조합의 현수막이나 집회가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 이러한 학습권 주장은 청소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잠재우고 싶은 대학의 욕구와 맞물려, 주로 총학생회의 입을 통해 말해진다.

총학생회는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을 떼기도, 농성장을 철거하라 요구하기도 한다. 청소노동자들은 바르르 떤다. 어떻게 생존 투쟁을 하는 사람에게 공부할 권리가 우선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른(?)들은 묻는다. 이 사람들의 생존권과 너희들의 학습권 중 뭐가 더 중요하니?

청소노동자들이 생존권 싸움을 할 수 있는 권리(고작 노동3권)를 얻기 위해 한 치열한 행동들을 떠올린다. 1980년대와 다를 바 없이 요즘도 노동조합은 숨어 만든다. 비정규직은 더 그렇다. 들키면 해고를 감수해야 한다.

학생들이 학습권을 얻기 위해 한 행동들도 떠올린다. 대학에서 학습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학생들은 12년 동안 많은 것을 희생했다. 수면, 놀이, 방학만 빼앗긴 게 아니다. 인권과 존엄도 포기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운 교실에서 공동체 의식도 상실했다.

그들은 ‘네가 공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부모와 교사, 아니 사회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었다. 그렇다고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될 거라 믿을 만치 세상 물정 모르지 않는다. 대학에서 얻은 학습권은 취직을 위한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12년 동안 해왔던 것과 다를 바 없이 대학 학습에 임한다. 그런데 청소노동자들이 학교에서 소란을 피운다.

쟁의행위 중 소란은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타인의 시선과 귀를 주목시키는 행위이다. 그러나 들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나’는 봐왔다. 학습지 교사가 아프다고 했을 때 쉬라 하면서도 보충수업 날짜를 잊지 않고 물어보는 부모를, 성적 증진을 위해 우등생과 열등생의 교실을 나누는 학교를. 행복을 위한 필수요소라 배워온 나의 학습권은 어떤 사람의 사정이나 인권, 가치보다 소중한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조금만 생존을 포기하면 면학 분위기가 조성될 것 같은데, 화가 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낸 나보고 나쁘다 한다. 이제껏 한목소리로 나의 학습권이 중요하다고 말해놓고 말이다.

희정 기록노동자
희정 기록노동자
어쩌겠나. 화가 난 김에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학습권이 정말 우월한지를. 다만 역사에서 배우랬다고, 독일 나치가 장애인과 유대인을 제거할 때 ‘당신의 돈과 행복, 우월할 수 있는 권리가 저들로 인해 박탈당한다’는 선전을 했었다는 말은 덧붙이고 싶다.

희정 기록노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