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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삼인칭 대명사 / 김하수

등록 2015-05-24 18:45수정 2015-05-25 08:52

유럽계 언어들의 대명사는 매우 체계적이다. 단수와 복수, 남성과 여성, 그리고 중성, 더 나아가 일인칭, 이인칭, 삼인칭 등을 대명사에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어의 대명사, 특히 삼인칭은 빈곤한 편이다. 그냥 ‘그 사람, 이 친구, 저 녀석, 그 여자’ 하듯이 단어를 나열하여 제삼자를 일컬어왔다. 한편 훨씬 자유롭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서구적인 문화 형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몇몇 문필가들이 우리에게 삼인칭 대명사로 ‘그’와 ‘그녀’를 사용했다. 특히 일본어 그(彼·かれ·가레)와 그녀(彼女·かのじょ·가노조)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20세기 초반에 우리에게는 원래 없었던 삼인칭 대명사가 태어났다. 그러나 이 대명사들은 글을 쓸 때는 어느 정도 사용이 되지만 말로 할 때는 전혀 아니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 문법 체계’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어휘인 셈이다.

세월은 흘러 오늘날에는 ‘양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사회 윤리의 중요한 지향점이 되었다. 그래서 ‘여의사, 여교사, 여직원’처럼 성적인 표시를 피하는 것이 올바른 언어 예절로 받아들여진다. 선입관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남성과 여성을 문법적으로 반드시 드러내는 유럽계 언어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매우 곤혹스러워한다. 반면에 우리는 앞에 붙이던 ‘여-’라는 접두사를 빼버리면 간단히 끝난다. 그리고 마음속의 차별 의식을 극복하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그러나 몇 걸음 더 나아가 보자. 10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정착을 못한 삼인칭 대명사 가운데 ‘그녀’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 본다. 여성들이 굳이 좋아하는 말도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차라리 ‘그’라는 삼인칭을 탈남성화하여 남녀 구별 없이 범용화된 대명사로 쓰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태도가 아닐까? 아직 우리 감각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말을 떼어내 버리고, 더 나은 언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면 이것도 의미 있는 작은 결단이 될 것이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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