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읽는 게 아니다. 시는 읊는 것이다. ‘읊다’는 낭송하다, 노래하다, 부르다와 한뜻이다. 시의 원형이 노래인 까닭이다. 노래하듯, 다음 시를 읊어보자. 기왕이면 나직하게, 느릿하게.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 //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강나루는 하천 정비 사업으로 부두가 되었고, 밀밭은 값싼 수입밀에 밀려났다. 집집마다 담가 먹던 가양주는 근근이 명맥을 이어왔다. 세태 변화는 목월의 시 ‘나그네’를 ‘시 속의 정경’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잊힌, 잊혀가는 ‘시 속의 정경’을 동남아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오감으로 느꼈다. 쩍쩍 갈라진 논 사이의 논두렁길을 걸었다. 군데군데 터져 있는 물꼬에는 물 대신 먼지바람이 휘돌고 있었다. 건기여서 물 빠진 논바닥에는 송아지 한 마리가 칭얼대듯 어미 소에게 몸을 비비고 있었다. 푸드덕 홰치는 수탉 옆에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가 ‘라이브 쇼’로 펼쳐졌다. 암탉 언저리에 반구 모양 둥우리가 눈에 띄었다. 아, 이름이 뭐더라? 동행에게 물으니 선뜻 답이 오지 않는다. 일행 가운데 국어학자를 찾아 물었다. 그는 명칭을 알고 있을까.
“표준어 형태로는 ‘닭의어리’이다.” 국립국어원 김문오 박사가 단박에 답했다. “‘쇠고기’(소의 고기), ‘달걀’(닭의 알)과 같은 조어 형태라는 설명이 따라왔다. 과연 그랬다. 사전을 확인하니 ‘나뭇가지나 싸리 따위로 엮어 닭을 넣어 두는 물건’은 ‘닭의어리’, 방언형은 ‘닭어리’였다.
관광주간이 시작되었다. 여러 매체가 ‘여행 가기 좋은 곳’을 소개하며 나들이하라, 등 떠민다. 대부분의 학교는 오늘을 재량휴업일로 정했다.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 봄날이다. 기왕이면 고즈넉하고 한갓진, ‘닭의어리’가 살아 있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 그런 곳은 어디? 혹시, 찾으면, 내게도 알려주시길….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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