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내고, 정보 전달 방식을 바꾼다. 봉화와 파발의 쓸모는 통신기기 등장으로 사라졌다. 공중전화를 비롯한 유선전화의 쓰임은 갈수록 줄고 개인 이동통신기기의 활용은 날로 늘고 있다. 스마트폰은 음성통화를 넘어 ‘소리 없는 통화’도 가능하게 한다. 언젠가 우연히 목격한 ‘수화 영상통화’의 신선한 충격은 몇 해가 지난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무장벽(barrier-free) 세계는 ‘따뜻한 기술’의 힘으로 점점 넓어져 간다.
지상파 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방송’으로 송출된다. 듣지 못해도 뉴스와 연예 오락, 드라마, 교양, 스포츠 중계방송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DVS, Descriptive Video Service)도 있다. 드라마 대사 등의 소리 정보 외에 출연자의 움직임과 표정 따위를 음성으로 해설해주는 방송이다. 텔레비전 수신기에서 ‘자막’, ‘음성다중’을 선택하면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다. 뉴스를 비롯한 몇몇 프로그램은 각 방송사가 돌아가며 ‘수화방송’을 한다. 텔레비전 오른쪽 아래 동그란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수화통역사’들의 번역은 한국어일까? 아니다.
한국어(Korean)와 한국어 수어(Korean Sign Language)는 다른 언어다. 수화(手話)와 한뜻인 수어(手語)는 ‘한국수어법안’의 제정 논의가 시작될 때 법정용어로 선택되었다.(‘수어, 또 하나의 언어’, 국립국어원) 한국 수어가 영어, 중국어, 아랍어 등처럼 한국어와는 엄연히 다른 언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농인(聾人)은 ‘보이는 언어’로 모어를 습득하고 청인(聽人, ‘농인’에 대비하여 이르는 말)은 ‘들리는 언어’로 모어를 익힌다. 당연히 언어체계도 다르다. ‘무슨 계절을 좋아해요?’를 ‘수화통역사’는 ‘계절-좋다-무엇?’으로 표현한다. 한국어와 영어의 문법이 다른 것처럼 수어와 국어의 문법도 다른 것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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