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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식해 / 강재형

등록 2015-02-22 18:52

새로운 맛을 알게 된 때는 혼인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 밥상’에 ‘장모 밥상’이 더해지면서 맛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처가와 본가의 음식 맛은 같은 듯 달랐다. 밥상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맛깔은 미묘하게 갈렸다. 고깃결 따라 찢어낸 장조림과 넓적하게 썰어낸 그것의 차이는 육개장의 걸쭉하고 맑은 국물에서도 나타났다. 김칫국을 먹는 횟수는 줄었고 토란국이 상에 오르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잦아졌다. 난생처음 맛본 음식도 생겼다. 함경도가 고향인 장인어른 덕분이다.

매콤 새콤한 맛에 비릿한 느낌 살짝 묻은 독특한 향이 입안에 퍼지던 때를 기억한다. 조밥에 고춧가루, 무채 따위를 양념해 참가자미를 한데 버무려 삭힌 반찬, ‘가자미식혜’로 알고 있던 가자미식해였다. 무와 고춧가루가 들어가 맵고 칼칼한 안동식혜가 있으니 함경도엔 ‘가자미식혜’가 있으려니 싶었다. ‘식혜’와 ‘식해’?

1963년에 펴낸 <신찬국어사전>은 ‘식해’를 ‘생선젓’으로만 풀이하고, 양주동이 감수한 <국어대백과>(1980년)는 식혜의 2번 뜻으로 ‘생선을 토막쳐서 소금과 조밥과 고춧가루 따위를 넣고 만든 찬’으로 설명한다. 옛날 사전은 ‘식해=생선젓’을 가리킨 셈이다. 신문기사를 보면 1980년대까지는 식혜, 그 이후엔 식해를 쓴 비율이 높아진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식해를 ‘생선젓’과 비슷한말로 제시하면서 ‘생선에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으로 풀이한다. 설날 ‘고향 맛’을 전한 특집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전을 좇아 ‘-식해’라 했다.

북한 <조선말큰사전>은 ‘생선을 토막쳐서 얼간했다가 채친 무우와 함께 밥을 섞어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하여 버무려서 삭힌 반찬’을 식혜라 한다. 함경도 출신 누구는 “함경도에서는 ‘-식혜’라 했다. 엿기름을 넣어 만들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힘을 얻지는 못한다. 같은 음식을 두고 남한은 ‘식해’, 북한은 ‘식혜’라 하는 것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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