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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돔 / 강재형

등록 2015-02-08 18:51

삼다도, 삼무도, 삼다삼무도. 제주도를 이르는 말이다.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은 섬,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섬, 그리고 이 세 가지가 각각 많고 없는 특징을 담아 부르는 표현이다. 이런 특성은 21세기 제주에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바람과 돌은 여전하지만 2014년 남녀 비율은 반반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여성 우세는 간데없다’인 셈이다. 제주 세태를 담은 삼무도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철도, 고속도로, 국도가 없는 ‘삼무’가 되었다. 도로 총연장은 3200㎞가 넘지만 모두 지방도다. 이 시대의 ‘삼다’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제주 흑돼지’를 내건 고깃집, 횟집 차림표에 씌어 있는 돔이 아닐까 싶다.

지난달 말 제주에 다녀왔다. ‘고등어회를 맛보고 싶다’는 일행의 뜻에 따라 찾은 횟집은 뜻밖에 한갓졌다. 으깬 얼음 위에 얹혀 나온 고등어회는 기왕에 알던 맛이 아니었다. 소문만 요란한 ‘맛집’과 사뭇 다른 느낌. 맛의 비결을 물어보니 ‘선어(말리거나 절이지 아니한,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생선)가 아닌 활어(살아 있는 물고기)만 쓰기 때문’이란다. 주인의 자부심 가득한 말이 믿음직했지만 ‘숙성한 회가 더 좋다’는 이도 있으니 꼭 그래서인 것만은 아닐 듯했다. 고등어회를 먹자니, 고도리(고등어의 새끼) 구이 생각이 났다. 갈치 횟감으로 제격인 풀치(갈치의 새끼) 생각도.

우럭볼락을 뼈째 우려낸 뽀얀 국물의 우럭탕은 별미였다. ‘우럭’ 하면 대개 물고기를 떠올리지만 사전은 ‘우럭’의 본말로 ‘우럭볼락’을 제시한다. 곁들이로 차려진 참돔과 돌돔 구이의 쫀득한 듯 푸석한, 푸석한 듯 쫀득한 맛이 오묘했다. 돔과 도미는 같은 것이지만 본딧말인 도미(20개)보다 준말인 돔(73개)을 붙인 이름이 훨씬 많다.(표준국어대사전) ‘물고기 도미’(약 17만건), ‘물고기 돔’(약 29만건)의 검색 결과도 다르지 않다.(구글) 우럭과 우럭볼락, 돔과 도미. 언중은 발음하기 쉬운 걸 따라간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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