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 기록노동자
이 세상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그리고 마을의 모든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100명 중 7명은 농사를 짓거나 고기 잡는 일을 합니다. 8명은 상점에서 물건을 팝니다. 7명은 운전을 해 물건과 사람을 나르고, 8명은 음식을 만들어 제공합니다. 3명은 광산이나 건설현장에서 일합니다. 다른 3명은 기계를 조작하고 조립합니다. 공학 기술을 연구하는 이도 2명 있습니다.
4명은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학문을 연구하고, 2명은 예술이나 운동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습니다. 1명은 불을 끄고 치안을 유지하는 일을 합니다. 사무실에 앉아 경영과 회계 업무를 보는 사람이 13명. 돈을 모으고 부풀리는 금융 일에 3명. 이들이 있는 건물과 마을을 청소하는 이는 2명. 각 분야의 업무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사람은 2명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수를 조사하고 통계를 내는 사람이 1명 있습니다.
위에 언급된,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여러 노동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룹니다. 불을 끄는 한 명이 사라진다면 마을은 화마로부터 지켜낼 수 없고, 건물을 쓸고 닦는 이가 오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도 건물에서 일할 수 없기에, 마을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을 존중합니다.
경비노동자에게 상한 음식을 먹으라 요구하지 않습니다. 청소노동자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고 인상 쓰지 않습니다. 인터넷 수리기사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백화점 판매 노동자에게 무릎 꿇어 사과하라고 하지도 않지요.
운송 일을 하는 7명 중 한 명인 택배기사에게 왜 이리 늦었냐고 따지는 이가 없습니다. 오늘 배송해야 할 수백 개의 물건이 그의 탑차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그 많은 물건을 배송해도 부자가 된 택배기사 하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택배물 하나당 받는 돈은 700여원. 700원들을 모아 회사 로고가 새겨진 탑차 할부금을 갚고, 기름을 넣고, 점심을 먹고, 통신비를 내고, 잃어버린 물건 값을 배상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제하고 남은 돈을 집으로 가져가는 택배기사를 마을 사람들은 잘 압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트에 가서 시식코너 음식을 함부로 먹지 않습니다. “많이 드세요” 시식 노동자가 웃고 있어도, 종일 음식을 굽고 자른 그의 어깨는 시큰거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식대에 음식이 사라지면 마트 관리자의 눈빛이 날카로워집니다. 시식 노동자는 마트 직원조차 아닙니다. 판매제품 회사에서 보낸 파견노동자일 뿐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파견노동의 서러움을 알기에, 거기에 짐을 더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노동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정직원들을 자르고 그 자리에 파견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데려와 반값 월급을 주는 행위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지 않습니다. 대기업 로고가 달린 차를 타고 유니폼을 입고 회사가 지시한 일을 정해진 시간에 수행해야 하는 사람을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주라고 칭하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그래서 2명의 관리자가 기업의 이윤을 올리는 데 골몰하여 이러한 고용형태를 만들고 수행하는 것을 보고만 있진 않습니다. 자신 또한 마을을 이루는 어떤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라는 마을에는 비정규직 노동을 하는 이들이 24명 존재합니다. 이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3년이 지난 후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이는 이들 중 5명. 6명은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합니다.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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