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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문과의 위기와 가리왕산 / 조원광

등록 2014-11-02 18:43

조원광 수유너머N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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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가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핵심은 문과 학문을 전공하는 것이 취업에 불리하다는, 좀더 노골적으로 말해 돈 버는 데 쓸모가 없다는 점에 있다. 기업들이 문과 전공자들을 기피하자 고등학생들도 문과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취업률이 주요 평가 지표인 대학들은 문과 전공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일부 인사들은 문과 졸업생도 장기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인재임을 애써 강조하지만, 이런 말은 문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내가 들어도 설득력이 크지 않다. 문과 학문 대부분이 경제 영역 바깥에 있는 여러 가치에 주목하고 그것의 역학과 관계를 다루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돈이 되겠나.

문제는 돈이 되지 않으면 사라져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조금만 둘러보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평창 올림픽에서 3일 사용할 알파인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보호종과 희귀식물의 서식처인 가리왕산을 벌목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올림픽이 수많은 생물의 삶보다 중요한 이유는, 전자는 64조의 경제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학문도 생명도, 가격이 매겨질 수 없고 화폐로 교환될 수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

돈이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계속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못한 듯하다. 경제학자 이스털린에 따르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은 집단의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돈이나 물질에서 오는 기쁨의 속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본적 생존을 해결한 이후, 돈과 물질이 가져다주는 만족은 많은 경우 상대적 지위에서 온다. 내가 남보다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넓은 집에 사는 데서 만족을 얻는다는 말이다. 남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기에, 서로 더 많이 가지려는 경쟁이 일어난다. 하지만 힘들게 경쟁해 더 많은 돈을 벌고 모두가 풍요로워져도 삶의 만족은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 지위는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평 집에 살면서 15평 집에 사는 동료를 보며 느끼는 쾌감이나, 40평 집에 살면서 30평 집에 사는 동료를 보며 느끼는 쾌감은 그리 다르지 않다. 삶을 대하는 시선이 변하지 않으면, 국민 소득이 4만달러가 되어도 행복해지기 힘들다.

그렇기에 돈 버는 일에 모든 정열을 퍼붓는 것은 사실 비합리적인 일이다. 그 힘을 아껴 어떻게 타인을 대하고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계속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시행된 세계가치조사의 결과를 보면, 한국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가장 팽배한 나라 중 하나다. 물질주의자라고 분류되는 사람이 미국은 23.8%, 일본은 24.1%인 데 반해 한국은 45.2%에 이른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 수준의 스페인도 33.5%임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의 지나친 물질지향성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편향된 가치관은 안전 같은 중요한 가치들을 소홀히 여기게 만들었고, 세월호 참사 같은 끔찍한 일로 이어지고 있다.

문과 학문은 대체로 돈이 되지 않는다. 가리왕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요하다. 그것들은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어떤 시선으로 타인과 다른 생명을 바라봐야 행복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돈 안 되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지복을 얻는 합리적 전략이다.

조원광 수유너머N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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