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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내 월급의 기준 / 희정

등록 2014-10-19 18:48

희정 기록노동자
희정 기록노동자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미용사는 입술을 닫아 문다. 빗질을 힘주어 할 때는 손목뼈가 도드라지며 미세하게 팔근육도 떨린다. 머리카락을 수십 갈래로 나누어, 갈래마다 빗질을 하고 약을 발라 펴 내린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몇 해 전만 해도 미용실에 가는 일은 불편했다. 몇 시간 동안 할 일 없이 꼼짝 않는 일은 지루했고, 미용사의 손길이 미숙한 기미만 보여도 불안했다. 망치는 거 아니야? 기록노동을 업으로 삼은 후, 미용실에 가는 일은 한결 수월해졌다. 미용사의 손을 좇다 보면 시간이 제법 잘 간다.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반복된 손동작들. 서비스 상품을 의심하고 품평하는 고객의 입장이 아닌 노동을 본 까닭에 상품, 특히 서비스 상품이라 불리는 것이 실은 타인의 노동임이 눈에 들어온다.

집중력과 숙련도를 요하며, 더불어 근육이 떨릴 정도의 힘이 들어가는 반복 작업, 손님에게 하는 감정노동까지. 이 복합노동에 대한 관찰과 감탄은 미용가운이 벗겨지며 끝난다. 지갑을 여는 순간, 그간의 감성적인 기분에 균열이 간다. 비싸다.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내 안에서 튀어나온다. 마음을 다잡지 않는다면 ‘고작 몇 시간에 이 돈을 받는다고?’라는 생각이 머리를 들 뻔한다.

변명이지만, 재화와 서비스가 돈과 교환되는 사회에서 소비자가 상품의 가치를 비하하는 일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상품의 가치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의 액수와 같다면, 그 가치를 깎고 봐야지 않겠는가. 시장에서 흔히 하는 것처럼. “이 과일 흠집도 있네. 좀 깎아주세요.”

상품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 그리하여 노동에 대한 무심과 비하, 흠집내기가 따라온다. 가격의 적절성을 판단하려는 소비자는 생각한다. “고작 이거 하고 이렇게나 받아?” 노동의 숙련도, 고됨, 감성적 측면 등을 인정하는 행위는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하려는 욕구와 대치된다.

이런 대립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고용주에게 더 강하게 드러난다. 한 자영업자는 알바노동자를 고용하자, 그에게 주어야 할 월급이 머리를 맴돌았다고 한다. 그 결과, 알바노동자 쉬는 꼴을 못 봤다. 한 시간 일하고 한 끼 식사도 못 먹을 돈을 주지만, 그것이 내 호주머니에서 나간다고 생각하니 알바의 노동이 못마땅해진다. 자꾸 일을 시킨다.

그래서인가, 고용주들은 임금에 야박하다. 꽤 많은 직업에서 법정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처럼 군림한다. 청소노동도 그러하다. 일의 고됨이나 노동의 결과인 청결은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노동이라 폄하되고, 일하는 이의 학력, 나이, 성별, 실업군까지 고려하여 임금이 결정된다. 그 정도 돈만 주어도 되는 노동이 생겨난다.

노동력의 가격이 고용주의 임의의 잣대에 따라 결정되고, 그것이 사회적 기준이 된다. 그래서인가. 빤한 월급 받고는 못 견디겠다고,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100일 넘게 파업 중인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받는 질문은 통념적이다. 다른 대학 청소노동자들 월급도 100만원 남짓인데 왜 인상을 고집하는가?

되묻고 싶다. 청소노동의 가치가 왜 월 100만원 선이어야 하는가. 생활 불가능한 금액이라는 당사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쯤 받으면 되는 노동’은 누가 결정하는가. 청소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노동이 구매하는 이들의 입맛에만 맞춰져야 할 정도로 그리 하찮은가.

희정 기록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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