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언젠가부터 ‘엄친아’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 엄친아라는 말이 생겼을 때 거기에 그 아이의 ‘집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냥 그 아이 하나가 이것저것 뛰어나게 잘할 때 이 말을 붙여줬다. 그러나 요즘 이 말의 의미가 살짝 변했다. 방송이나 매체에서 사용하는 이 말에는 그 무엇보다 ‘좋은 집안’이 먼저 들어가 있다. 심지어 그 사람 자체가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집안이 좋으면 혹은 부유하면 바로 엄친아라 불린다.
또 ‘집안 좋은 아이들은 구김살이 없다’는 말도 자주 귓가를 스치기 시작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능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독하다고, 성격에 벽이 있다고도 한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던 적이라고는 없는 아이에게 무슨 구김살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말은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 사람을 다치게 한다. 부유한 환경이 아니어서 그렇게 쓸 수 없고 배울 수 없고 가질 수 없었던 아이들이 그들처럼 행동하고 반응하지 못하면 그것은 구김살 있는 행동이 되고 루저의 ‘열폭’이 되어 그렇게 반응하는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다.
배경으로 사람을 구분 짓는 작업이 대놓고 대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과학고, 외고, 자사고, 국제고 등등 유별난 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도 비단 공부를 넓고 깊게 하게 해서 자녀들을 훌륭한 학자로 길러내겠단 목적에서만은 아니겠지.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인맥’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이 나라에서 불가능한 말이 되었다고 한다. 계급으로 사람을 규정짓는 닫힌 사회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걱정스럽다.
나는 문득 허균(許筠)의 ‘유재론’(遺才論)이란 글이 떠올랐다. 버려지는 인재에 대한 탄식이 가득 담긴 글. 하늘은 인재를 낼 때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하여 재능을 더 많이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 하여 덜 주지 않는다고, 하늘이 고르게 주는 인재를 우리나라는 명문가 출신인지를 따지고 과거 시험 성적으로 따져 버려버리고서 나라에 인재가 없다고 탄식한다고, 이러고도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남쪽을 정벌하겠다면서 전차를 북쪽으로 모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늘이 사람을 냈는데 그 사람을 버려 하늘을 거스르고서 나라가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허균은 신분질서가 법이었던 시대를 살면서도 이렇게 탄식했다.
배경으로 사람을 따지고, 부모의 입김이 자녀에게 깊이 영향을 미치고, 부유한 사람들이 무엇이든 누리는 세상을 보며 ‘아, 저기로 들어가고 싶다!’만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지금 얼마나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절망으로 눈물 흘리고 있을까? 돈과 그 돈으로 만든 계층이 나와 내 자녀를 구원하고,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우리 집 주변을 감시하는 것이 나를 안전하게 해줄 수 있을까? 오히려 분노와 원망으로 얼룩진 사회가 아니라 재능 있는 사람이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해서 각 분야에서 그 재능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사회가 될 때 세상은 탄탄하고 안전해지지 않을까?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선망의 시선을 길러주는 사회는 불안하다. 유리천장을 향해 도약하다가 서로 머리를 찧고 떨어져 골절상을 입고 주저앉기보다 그 유리천장이 없어서 마음껏 꿈꾸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꿈이 아닌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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