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얼마 전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보았다. 스파이더맨이 ‘일렉트로’라는 전기괴물로부터 뉴욕을 구해내는 내용이었다. 일렉트로는 전력망을 타고 다니며 전기를 흡수해 그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괴물이었다. 그런 일렉트로와 스파이더맨이 마지막 일대 격전을 벌이던 밤, 일렉트로가 전기를 다 흡수해서 뉴욕은 블랙아웃이 되었다. 혼란에 빠진 이 거대도시는 거의 최후의 날을 맞는 분위기였다. 일렉트로는 호기롭게 말했다. “이 전력망은 내 것이다. 나는 모든 걸 통제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일렉트로가 시골에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이니까 저런 말이 먹히는 거지 일렉트로가 시골에서 저런 말을 했다면 주민들은 “대체 뭐라는겨?” 하는 반응이었겠지? 나도 모르게 ‘풋!’ 코웃음이 쳐졌다. 하지만 막연한 시골의 얼굴이 한순간 ‘밀양’이라는 구체적 얼굴로 바뀌면서 울컥 눈물이 솟았다. 송전탑 때문에 가슴에 피멍이 든 밀양. 전기가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기실 도시이다. 일렉트로는 도시에서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맞다. 송전탑이 서는 밀양의 실제 전기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시골 마을이 전기괴물의 격전지가 되어버렸다. 밀양뿐만 아니라 이 괴물은 청도 주민들도 괴롭히고 있다.
밀양에서 송전탑 참극이 벌어지게 된 데에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드라이브와 노후 원전 연장 가동, 신고리 원전 증설 등에 걸려 있는 수십조 단위의 돈이라는 직접적인 원인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전기 소비의 주체인 도시민들의 무심함도 한몫 크게 했으리라. 영화에서야 전기괴물이 대도시를 위협하지만 실제 삶은 정반대이다. 도시가 아니라 애꿎은 시골이 공격받는다. 전기를 조종하는 힘이 자본이기 때문이다. 돈은 돈이 있는 곳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비하는 자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생산지와 소비지의 공간을 분리시킨다. 전기가 어디에서 생산되어 어떤 방식으로 내게 오는지 나도 오랫동안 궁금해하지 않았다. 전원을 켜고 콘센트를 꽂으면 그뿐. 전기가 너무 흔하고 익숙해서 도리어 전기에 대해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고 살았다. 그저 내가 누리면 그만이었다.
그 무심함을 타고 핵발전이 조용히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핵으로 생산된 전기는 그 전기를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시골에 세운 고압 송전탑을 통해 그곳 주민들의 삶을 황폐화시키며 도시로 공장으로 기업으로 소비의 복판으로 전송되어 왔다. “설마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 애써 자위하며 핵발전도 시골 어느 마을의 고통도 마음에서 지웠다. ‘설마’에 관계된 모든 변수는 누군가가 영웅처럼 나타나 해결해주기를 막연히 기대했다. 결국 스파이더맨은 뉴욕을 구했고, 다시 전기가 들어왔지만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일렉트로가 시민들로부터 깨끗이 잊혀지는 것을 보며 궁금해졌다. 전기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그저 전원만 켜면 되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준 스파이더맨이 진짜 영웅이긴 한 걸까? 핵에너지에 대한 고민, 송전탑의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시골 주민들의 아픔을 잊는 순간 다시 자본은 우리의 삶에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내가 그 구미에 맞는 소비를 할 수 없게 되는 순간, 그 폭력은 나의 삶에도 행사될 것이다. 영웅은 없다. 고민도 나의 몫이고 실천도 나의 몫이다.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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