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조선시대에 사관이 왕의 주요회의에 참여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을 ‘사초’라 했다. 왕조차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었을 만큼 공정성과 객관성에 만전을 기했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의궤>는 후세에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겨졌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까지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방대하고 치밀하면서도 놀라운 기록”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조선의 화려한 기록문화 전통은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 후퇴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청와대는 자체 기록을 거의 안 남겼다. 폐기에 더 급급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그러니까 1990년대 후반 청와대 안에는 연기가 자욱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절대권력’의 은밀하고 부끄러운 치부를 전부 태우느라 그랬다는 것. 송찬호 시인의 ‘만년필’이라는 시처럼 펜이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만 했으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다. 그가 남긴 기록물은 역대 대통령 기록물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 기록들을 트집 잡아 사후에도 정치적으로 이용한 후안무치한 무리들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재임 중 ‘사관’을 한 명 두고 모든 회의에 배석케 했다. 바로 윤태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다. 고인의 서거 5주기를 맞아 나온 <기록>(책담)이란 책은 그래서 귀하다. 이 책 덕분에 숨기거나 보태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노무현을 읽을 수 있었다. 기록된 것만이 역사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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