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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안철수가 ‘싸움꾼’이 된다면… / 임석규

등록 2014-04-03 19:05수정 2014-04-07 09:15

임석규 논설위원
임석규 논설위원
안철수의 처지가 곤궁하다. 이쪽저쪽에서 난타당하는 동네북 신세다. 한쪽에선 철학이 없다, 중심을 못 잡는다, 정체성을 모르겠다고 하는데, 다른 쪽에선 새정치가 증발했다, 민주당에 포획됐다, 색깔을 잃어버렸다고 퍼붓는다.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는 직진하자니 당내에서 아우성이요, 회군하자니 창당 명분이 허물어질 지경이다. 정당 지지율도, 개인 지지율도 동반 하락 추세다.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정치생명이 위협받는다.

위기는 잘못된 정치문법에서 비롯한다. ‘안철수식 새정치’의 출발점은 ‘진영 타파의 논리’였다. ‘같은 편 의식’에 갇힌 진영논리를 깨뜨려야 정치가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다. 최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이념적 동질성에 집착하는 진영의 정치,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증오와 배제의 정치’를 근본 문제로 꼽았다. 그래서 ‘성숙하지 않은 민주주의, 승자독식의 정치, 정치보복 시비’도 “정치가 이념과 진영, 지역에 갇힌 탓”이라고 진단한다. 과연 그런가. 국가기관이 댓글로 선거 여론을 조작하고, 정상회담 기록물 공개로 정치를 소용돌이치게 하고, 법원에 낼 증거를 조작하는 일은 진영 대립과 무관하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악행은 진영대립 문제로 치환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정원 정치개입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을 때였다. 어느 학자가 안철수에게 정치생명을 걸고 이 문제에 집중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와는 무관한 문제 아닌가요?” 안철수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인식이 이렇다 보니 역사 교과서 왜곡을 양비론으로 접근하고 6·15 선언, 10·4 선언을 두고 ‘소모적 이념갈등’을 우려하는 거다. 고원 교수(과기대)의 지적대로 새정치의 결론이 “싸우지 말자”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안철수는 민주당과 결합함으로써 우리 사회 양대 진영의 한 축에 확실하게 가담했다. ‘진영의 수장’을 맡았으니 빼도 박도 못할 형편이다. 그런데도 진영에서 탈피하자는 논리를 이어가고 있으니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위치가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이전의 ‘진영 타파 문법’을 고집하면 감동도, 울림도 없다. 진영을 탈피하자는 건 애초부터 무망한 얘기였다. 정치의 본질이 세력과 계층을 대변하고 편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영을 벗어나 국민 전체를 대변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정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세력들의 이해가 충돌하고 갈등으로 분출하며 진영의 대립으로 이어지는 게 세상 이치다. 대립하는 진영이 없다면 그곳은 이미 정치조직도, 정치리더십도 필요없는 유토피아일 거다.

김대중은 전라도였고, 노무현은 경상도였지만 비주류였다. 보수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 안철수는 경상도에 주류다. 그에게 지역이나 이념, 진영의 낙인을 찍기는 어렵다. 큰 자산이다. 그가 주류 중의 주류 출신으로 미국 민주당 중흥의 기틀을 다진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롤모델로 삼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는 싸움질이나 하는 줄 알았던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꿨고, 그게 민주당과 합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했다. 정치와 진영에 대한 진일보한 생각으로 평가하고 싶다. 지난해 사석에서 만난 안철수는 ‘진보와 중도의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걸 자신의 소명으로 내세웠다.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느릿한 말투, 진지한 표정은 진심일 거란 느낌을 자아냈다. 진영을 벗어난 정치가 난망하다는 걸 그가 받아들인다면 탁월한 싸움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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