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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 1년’과 문화 연구 필요성 / 박창식

등록 2014-02-20 19:05수정 2014-02-24 14:09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영국의 좌파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이 지난 2월10일 세상을 떴다. 그는 1970~90년대 영국 사회에서 대처리즘이라는 보수주의가 어떻게 하여 강력한 정치이념으로 떠올랐는지를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홀의 분석을 빌리면 대처리즘은 시장 자유주의에다 도덕적 복고주의를 독특하게 결합시켰다. 대처는 노동당 정권에서 국가의 보호 아래 우유부단함을 키워온 것이 영국의 추락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대처는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가자”며 근면, 성실, 자존과 같은 보수가치를 회복해야 영국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해 한동안 대중을 사로잡았다. 대처리즘이란 말도 스튜어트 홀이 처음 썼다고 한다.

현대의 극우 자본주의 체제는 대중의 적극적인 동의에 기반해 유지된다. 단순히 독재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이 아니다. 권위주의가 등장할 때 그 대중 설득의 기제를 밝히는 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까닭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을 휩쓴 파시즘이 왜 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는지, 대중은 반민주적인 체제에 왜 기꺼이 순응했는지를 연구했다. 그 요인의 하나로 20세기 들어 라디오·영화·텔레비전 등 문화산업이 급팽창한 것을 꼽았다. 문화산업은 팔리기 위한 상품을 생산하려고 늘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데, 강한 자극이 대중의 감각과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 능력을 퇴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중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인성 구조를 갖게 된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일모레로 1년을 맞는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 비롯해 검찰총장 찍어내기, 강압적으로 파업 무너뜨리기, 개혁적 공약들 죄다 뒤집기까지 국정이 문제투성이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5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기마경찰을 투입해 광산노조를 제압한 대처가 “다음에는 탱크를 보내려고 했다”고 당당히 말하던 모습이 연상될 정도다. 이명박 정부가 첫해에 국민의 신망을 잃고 비틀거린 것과 정반대다.

이념과 담론 지형으로 볼 때, 나는 종북 여론몰이를 강력하게 정교하게 꾸준하게 펼친 것이 박근혜 정부가 기반을 유지해온 으뜸 힘이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의 종북 담론은 과거 안보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던 북한이, 체제 경쟁에서 뒤처져 업신여김의 대상으로 추락한 현실에 터잡고 있다. ‘통일대박론’도 결국은 북한을 손아귀에 넣고 일종의 ‘내부 식민지’처럼 쥐락펴락해보겠다는 이야기다.

종북 담론은 기본적으로 차별과 배제, 멸시의 논리를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정권이 일단 종북으로 찍은 집단을, 누가 나서서 편들고 엄호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유죄 판결에 대해 민주당이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그나마 정의당과 노동당이 “사상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판결을 적극적으로 비판한 게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학계 움직임을 보면, 우리 지식사회의 고민이 아직은 덜 깊어진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가령 박근혜 정부 1년 토론회가 여기저기서 열리는데, 대개 분야별 정책 평가에 머물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언어와 소통, 여론 형성 등의 기제를 두루 탐구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문화 연구’라는 학문 영역까지 형성했던 스튜어트 홀이나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많이 앞서간 존재였던 모양이다. 제1야당의 ‘무개념’ 행보도 학계의 수준과 무관하진 않을 듯하다. 담론 연구를 통해 특정 정파가 이익을 얻으라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이 촉진되었으면 해서 하는 얘기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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