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편집장
이석기와 장성택, 같은 시기에 벌어진 남한과 북한에서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남북한의 정치권력이 적대적 분단체제로 인한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적과 마주하고 있는 한 ‘언제 국가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중증의 신경쇠약에 남북한 정부는 시달리는 중이다. 나는 바로 이런 심리가 남북한에서 대형 공안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라고 믿는다. 그런 비정상적인 심리는 우리가 직면하는 위협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혼동하게 한다. 예컨대 오늘 밤 당신이 잠자는 집의 천장은 무너질 수 있다. 또 당신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속한 빌딩은 무너질 수 있고, 어쩌면 이번 휴가에서 타고 갈 비행기는 추락할 수 있다. 분명히 그 확률은 제로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성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에 이런 가능성을 무시하고 산다. 왜 그럴까?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개연성, 곧 타당성이 적기 때문이다. 가능성만 인식한다면 우리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이상이 될 것이지만, 그 타당성까지 따져보고 비로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결혼식 날, 하필이면 추락하면 100% 사망하는 비행기를 타고 태연하게 신혼여행을 간다.
국가전복 기도 사건이라는 장성택 사건이나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이석기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가능성에 집착하는 공안논리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특별재판소는 이 가능성만을 근거로 장성택을 사형에 처했다. 이와 같이 올해 2월에 남한의 지방법원이 이석기 내란음모에 대한 타당성을 따져보지 않고 판결을 한다면 북한의 특별재판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바로 그렇게 하기를 검찰은 ‘징역 20년’으로 재판부에 주문했다. 이 사건에서 타당성이란 이석기와 그 추종자들이 과연 유사시 한반도의 전쟁 양상까지 북한에 유리하도록 변화시켜 국가를 붕괴시킬 의도와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필자는 이석기 재판에 출석하여 “부분적 가능성은 있으나 타당성은 적다”고 증언했다.
이미 대한민국은 견고하고 유연한 사회 기간망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한 부분이 마비된다고 하여도 국가 전체가 붕괴할 개연성은 낮다고 본 것이다. 또한 국제전으로 진행될 미래 한반도 전쟁은 이석기 때문에 그 양상이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다. 적어도 남한 전역에서 무장으로 국가를 전복하려면 좌파는 잘 훈련된 특전사 3개 여단 정도의 병력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좌파의 무장봉기 사상은 박헌영의 남로당 시절을 끝으로 멸종된 사상이어서 한국전쟁을 비롯한 분단의 그 어느 시기에도 무장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국가 전복을 위한 무장봉기의 원조를 찾으라면 남로당이 획책한 1946년의 대구 폭동, 1948년의 4·3 사건과 여순반란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희박한 가능성에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 분단체제의 불안심리가 지금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력과 언론이 이를 의도적으로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공소장 역시 손가락으로 툭 쳐도 국가가 픽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불안감에 국민을 감금하려는 논리다. 그렇게 국가가 불안하다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든지, 아니면 당장 북한과 전쟁이라도 벌여 그 불안을 끝내든지, 무엇이건 해야 할 판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안심리에 한때 망상을 했을지도 모르는 좌파 혁명가에 대한 판결을 맡길 수 없다고 본다. 그보다는 합리적인 국가이성이 판결해야 한다. 이성의 용광로에서 낱낱이 해부되고 검증된 진실만이 판결의 기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우리가 장성택을 처형한 북한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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