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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친북 프레임에 어떻게 맞설까 / 박창식

등록 2013-11-07 19:13수정 2013-11-08 08:54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친북(종북) 프레임에 어떻게 맞설 건가는 야당 지도자들한테 늘 고민스러운 문제였다. 보수정치 세력이 정적을 북한과 가까운 듯이 찍어 몰아붙이는 짓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용공음해, 좌경용공 몰이, 공안정국 조성하기, 친북좌파 만들기, 종북 딱지 붙이기 등 형태와 언어 표현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아무튼 친북 프레임이 한국전쟁의 상처를 악용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그릇된 정치수법의 표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친북 프레임 공격은 야당 지도자들한테 위협인 동시에, 반격하기에 따라서는 정치적 도약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김대중은 자서전에 ‘공안정국 망령’이라는 단원을 두고, 고민스러웠던 경험들을 기록했다. 1989년 봄 문익환 목사가 자신에게 방북 계획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당국에 허가를 신청하라고 했는데, 문 목사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그 결과 엄청난 공안 삭풍이 불었다. 서경원 의원이 몰래 북한을 방문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당 지도부가 박세직 안기부장한테 서 의원을 데리고 가서 사실을 털어놓도록 했다. 박세직은 자수하도록 하여 고맙다고까지 말했지만, 사건은 엄청나게 부풀려져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얼마 뒤에는 한국외국어대생 임수경씨가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 축전에 참가했다. 관련자들에 대한 수배와 검거가 이어졌다. 이에 평민당은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공안통치 분쇄 국민대회’를 열었다. 뜨거운 8월인데도 30여만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고 김대중은 회고했다.

김대중은 명분과 현실을 두루 고려했다. 방북, 밀입북 등의 ‘사실’이 존재할 때 법 집행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력 쪽의 문제 왜곡이 도를 넘을 때는 대중집회 등으로 정면승부를 걸었다. 이렇게 하여 민주주의 지도자로서의 평판과 정치적 입지를 굳혀 나갔다.

노무현은 대선 때 장인의 좌익 경력을 공격당하자, “내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라고 반격했다. 정적의 프레임에 끌려다니지 않고, 가족 사랑이라는 더욱 강렬한 프레임을 제시해 국면을 일순간에 반전시켰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국가보안법은 독재 시대의 낡은 유물”이라고 규정하고, 보안법 폐지를 주창했다.

노무현은 친북 프레임에 주눅 들지 않고 배짱 좋게 맞섰다. 보수 언론에 얻어맞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도자로서 가치와 명분을 중시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했지만, 재임 중에는 정치적 손해도 좀 보았다. 요즘 노무현이 박정희를 제치고 성공한 대통령 1등으로 집계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위험 요인을 만났을 때 눈치 보지 않고 기개 있게 대처한 그의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는 헌법상 시민권인 정치활동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짓이다. 과거 용공음해 여론몰이보다 훨씬 심각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그런데 야권의 큰손인 민주당 지도부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하나같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 조처가 성급하다고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이에 강력히 항의하지는 않는 것이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들이 해산 청구 자체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달리, 민주당과 안 의원은 일단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려보자고 한다. 다양한 논쟁이 있을 수 있으니 헌재 결정에 맡겨보자는 <중앙일보> 사설 정도의 관점을 택한 것이다.

이들이 눈치 보는 까닭은 짐작된다. 진보당을 편든다고 보수언론한테 공격당할까 봐 걱정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일까? 지금 야권 주역들의 정치 행보는 좀 안이해 보인다.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지금 살아서 야당을 이끈다면 최소한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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