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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내란음모 맞나요?’ / 홍용덕

등록 2013-10-22 19:11수정 2013-10-23 15:25

홍용덕 사회2부 기자
홍용덕 사회2부 기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 재판이 시작됐다.

지난 14일에 이어 22일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수원지법은 북새통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린 것은 1979년 지법 승격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해방 뒤 처음으로 내란음모 혐의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돼 국민들의 충격이 컸던데다 국가정보원과 통합진보당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실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취재기자인 나 역시 이번에는 취재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변의 질문들은 대개가 “내란음모가 진짜 맞아?”다. 답을 주저하면 “그래도 기자는 알 거 아니냐”며 은근히 압박한다. 순간 ‘헉!’ 내가 무슨 재판장이라도 되나?

‘내란음모 파문’이 지난 두 달간 눈덩이처럼 커졌지만, ‘공안당국’ 뒤에 숨어 군불을 지피는 식의 수사 행태만큼은 꼭 짚어야겠다.

국정원이 압수수색에 나선 지난 8월28일, 기자실은 ‘불난 호떡집’이었다. ‘혐의가 뭐래?’ 어렵사리 압수수색을 받는 몇몇 당사자(이 중 1명은 나중에 구속됨),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영장에 뭐라 써 있나요?” “… 아르오(RO)라는데요.” “그게 뭔가요?” “일명 산악회라네요.” “들어본 적 있나요?” “아뇨, 처음 봐요….”

퍼즐을 짜맞춘 오후에야 국정원이 “아르오 조직원들이 전시에 북한에 호응해 통신·유류 등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려는 등의 내란음모의 혐의를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수십쪽의 생생한 녹취록과 사제폭탄 제조법 외에도 검찰의 부인 속에 국정원이 북한과 연계성 확인을 위해 수원의 공중전화를 감청했다거나 진보당 김재연 의원 등도 아르오 조직원이라는 미확인 보도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내란음모 파문은 ‘아르오 조직원 중 30~40명이 공무원’이며 해방 후 처음이라는 ‘여적죄’가 등장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공안당국발’이라는 것이다. 또 ‘오보의 확인도 곧 사실의 확인’이라며 몸을 사리던 검찰이 “확인 좀 하고 기사 쓰세요”라고 붙잡고 나서도 ‘아니면 말고’ 식의 진격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검찰이 “공안사건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공안당국의 이런 ‘군불 때기 식’ 수사 행태를 비판한 것도 이때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례적이다. 공안사건은 보통 공안당국이 수사를 벌여 기소 시점에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위를 떠나 ‘검증 안 된’ 주요 피의사실이 수사중 줄줄이 샜다. 국정원과 법정 안에서 이뤄져야 할 수사와 재판이 밖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이뤄졌다.

‘공안당국발’의 여파는 컸다. 기사에서 ‘지난해 아르오 연락책’으로 지목된 30대 여성이 하소연을 한다. “저 올해 입사했어요. 기사가 나오고 저를 빨갱이로 의심하는데 어쩌나요?” ‘공안당국발’로 쏟아진 각종 미확인 내용들은 ‘전 국민의 예단’에 의한 ‘여론재판’으로 이어지면서 벌써 ‘1심 유죄’라는 말이 나돈다.

특종을 노린 언론의 과열경쟁을 적절히 이용한 공안당국의 ‘신언론활용법’인지 ‘공안수사의 새 전범’의 탄생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검찰 말대로 ‘독특한’ 이번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놓친 게 없는지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는 있을 듯싶다. ‘내란음모의 실체적 진실을 알려면 먼저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는지 물어보라’다. 대한민국의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은 피의자 혐의사실에 대한 증거만을 놓고 법정에서 당사자 간 공방을 거쳐 드러난 실체적 진실에 따라 법원이 유무죄를 판단하도록 한다.

내란음모의 진실은 어쨌든 1심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런데 나도 궁금하다. 진실은 뭘까?

홍용덕 사회2부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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