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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부산영화제 단상 / 이지현

등록 2013-10-06 19:11

이지현 영화평론가
이지현 영화평론가
3일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됐다. 데일리 잡지용 기사를 쓰기 위해 지난주 내내 서울에 있는 영화제의 프리뷰룸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예년보다 많은 편수의 영화들을 챙겨 봤다.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뉴 커런츠’ 부문과 젊은 감독들의 최신 경향을 돌아보는 ‘플래시 포워드’ 부문 위주였다. 팁을 던지자면, 두 부문 중에선 확실히 플래시 포워드 쪽 영화들이 더 흥미롭다. 뉴 커런츠가 감독 개인의 개성에 기대는 데 반해, 플래시 포워드의 작품들은 젊음의 에너지와 더불어 예술적 완숙함까지 겸비했다. 파올로 추카 감독의 <레프리>를 비롯해, 안토니오 피아차와 파비오 그라사도니아가 공동 연출한 <구원자>와 같은 작품들은 영화제가 아니라면 만나기 힘든 수작들이다. 국내에서는 흥행되기 힘든 소재인데다, 이탈리아 영화는 대단한 거장의 작품이 아니면 예술영화관을 통해서도 소개되는 일이 드물다. 영화제의 순기능 중 하나는 시네필(영화애호가)들에게 일상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수작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는 데 있다.

지난해 부산에 함께 머물렀던 어느 동료는 ‘영화의 전당’ 앞에서 이런 말을 던졌다. 부산은 이제 규모가 너무 커져서 예산을 정산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마 자신이 일하는 다른 영화제에 비해, 급성장한 부산에 대한 부러움으로 한 말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 질투심마저 설 자리가 없어진 듯 보인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영화제의 예산이 무려 120억원가량이다. 칸영화제 예산의 3분의 1 정도에 이르는, 비교적 큰 액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장 지표는 사무국의 분위기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과거 디브이디(DVD)로 지급하던 상영 방식이 지난해부터는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그사이 사무국의 분위기 또한 더 엄숙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영화제의 위상에 따른 내 나름의 동경심이 더해진 탓일 거다. 하지만 인간의 시선이란 자고로 상황의 변화에 따르기 마련이니, 혼자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칸이나 베네치아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이 열리는 도시는 대개 관광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부산 역시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에 비해 부산은 유독 영화제의 성장과 더불어 도시의 매력이 향상된 경우에 속한다. 실제 ‘영화의 도시, 부산’의 성공은 모두의 예상을 웃돌았다. 첫 회부터 단 한 번의 실패를 거친 적도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로 초청된 작품의 수도 많아졌다. 이제 감독들은 부산에서 신작을 소개하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한국의 신인 감독들 역시 이 장소에 초대된 것을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칸영화제가 홍상수를, 베네치아가 김기덕을 키운 것에 비견해 과연 부산이 특정 작가의 발굴에 기여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올해 초청된 자장커나 차이밍량 등 부산이 자랑하는 거장들은 모두 베네치아나 베를린의 선택으로 성장한 작가들이다. 20회를 바라보는 현시점에서 부산영화제가 너무 자신의 성장에만 치중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때가 됐다. 유럽의 영화제들은 영화의 정체성을 ‘산업’이 아닌 ‘문화’로 인식한다. 때문에 기초 토양의 제공에 막대한 힘을 쏟아붓는다. 그 결과 ‘예술로서의 영화’가 산업과 더불어 발전할 수 있었다. 영화제의 초심은 작가의 발견에 있다. 부산의 가을날이 더욱 예술적인 분위기로 완성되기를,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문화브랜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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