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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채동욱 이후 / 이재성

등록 2013-10-06 19:09수정 2013-10-07 16:14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최근 종영한 드라마 <황금의 제국>을 ‘몰아 보기’로 보는데 옆에서 아들이 물었다. “여기서 누가 착한 사람이야?” <포켓몬스터>의 선악 구도에 익숙한 아홉살짜리 아이에게 이 드라마의 복잡한 캐릭터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 나빠. 이 드라마엔 착한 사람 없어.” 아이는 집요했다. “그래도 그중에서 누가 젤~ 나빠?” 부도덕한 재벌 오너 가족, 살인까지 저지르는 주인공 태주, 배신과 협잡을 일삼는 사촌과 계모. 이 중에서 누가 가장 나쁜지 대답하는 건,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초등학생이 아닌 나는 누가 더 나쁜지보다, 검찰권 행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에 더 신경이 쓰였다. 전작인 <추적자>에서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법의 현실을 비판했던 작가는 이번엔 아예 검찰을 권력의 노리개로 묘사한다. 그룹을 지키려는 쪽도, 빼앗으려는 쪽도 모두 검찰을 활용하는데, 검찰의 칼끝은 그때의 대세가 누구냐에 따라 춤을 춘다.

드라마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검찰의 일그러진 모습이 우리 국민들의 검찰에 대한 시각을 어떤 형태로든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극적으로 커졌다. 정권과 재벌은 봐주고, 무고한 이들을 괴롭혔던 검찰, 각종 스폰서 검사들과 성상납 검사까지.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에 이어 드라마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이 나온 배경에는 법 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비상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청와대가 꺼렸던 채동욱 같은 사람이 총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사생활은 알지 못하지만 그가 많은 후배 검사들과 기자들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던 것은 잘 안다. 전임자들에 견줘 그가 받은 신망은 실로 대단했다. 채 전 총장 또한 이런 기대를 잘 알기에 기존 총장들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정부 핵심부는 입안의 혀처럼 굴지 않는 채동욱을 처음부터 못마땅해했다. 그러다가 사생활의 약점을 하나 잡았는데, 진위 확인도 어렵고 공무와 무관한 일이라 공식적으로 물러나게 할 수 없으니 언론을 통한 비방이라는 우회로를 택했을 것이라고 많은 국민들은 믿고 있다.

역사상 가장 치사한 방식으로 검찰총장이 쫓겨난 뒤,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다. 벌써 정권에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검사들이 보인다. 특히 공안통들은 남북 정상 대화록을 청와대와 여당 입맛대로 진상하려고 지나치게 무리하고 있다. 대화록을 국가정보원에 남겨 차기 정권이 볼 수 있게 하고,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게 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선의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검사들은 그 모든 사실과 맥락을 무시하고 권력이 가리키는 방향에 칼끝을 맞춘다.

출범 8개월이 다 되도록 정부의 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역대 최악의 아마추어 정권이 올해 안에 검찰총장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천타천의 하마평이야 숱하게 오르겠지만, 아마도 차기 총장은 김기춘·황교안 등과 말이 잘 통하는 공안통이 될 것이다. 눈치없이 원리원칙 따지기 좋아하는 특수통보다 민감한 권력의 더듬이를 가진 공안통이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간지라는 헤겔적 관점으로 보면, 박근혜 정부의 검찰 장악은, ‘검찰 개혁’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더욱 절실한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누가 좋은 편인지 묻는 아이의 질문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 정치에 대한 질문이라면 좀더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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