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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조선일보> ‘채동욱 보도’ 유감 / 오태규

등록 2013-10-03 18:58수정 2013-10-04 11:13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첫 보도와 그 뒤 벌어진 일들은 보도의 정치적 배경뿐 아니라, 보도의 정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 보도가 빌미가 되어 결과적으로 채 총장이 쫓겨났으니 조선일보로선 어쨌든 큰 걸 한 건 한 셈이다. 하지만 그것을 저널리즘의 승리라고 부를 순 없을 것이다. 사실의 추가 조선 쪽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조선의 보도는 ‘사실을 기초로 투명하게 진실을 찾아가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점이 많다.

언론계에 갓 들어온 수습기자도 지적할 수 있는 허점은 1면 머리기사를 내보내면서 당사자인 채 총장이나 그의 내연녀라는 임아무개씨의 반론조차 듣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청와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의 댓글 공작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그를 청와대가 눈엣가시로 여긴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 미묘한 시점의 보도였다. 조선이 첫 보도에서 ‘밝혀졌다’는 등의 단정적 표현을 썼지만, 혼외자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당사자 확인이나 유전자 검사 외엔 없는데도 말이다.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는 상투어조차 없는 건 그 기사가 애초 무자비한 ‘목적타’였음을 뜻한다.

그다음 나올 수 있는 의문은 가치 판단에 관한 것이다. 채 총장이 소장에서 표현한 것처럼 “확인되지 않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생활 영역”을 기사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직무 관련이 적은 공인의 사생활에 관대한 프랑스나 일본의 예에 비춰 보면 확실히 이번 보도는 과했다. 하지만 공직자에 대한 기대 수준과 문화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그런 나라의 기준을 똑같이 적용하긴 무리다.

공직자의 윤리에 민감한 우리 풍토를 고려하면, 채 총장 문제는 언론사의 판단에 따라 충분히 보도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그 잣대가 상황에 따라 달라져선 안 된다. 그러나 조선은 혼외자 문제로 송사까지 간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때는 ‘뭐가 문제냐’고 그를 적극 감싸더니 채 총장에 대해서는 자신이 의혹을 제기해 놓고는 큰 문제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전형적인 고무줄 잣대다.

조선은 이 보도가 나간 뒤 다른 언론사들에 대해 사실 확인보다 ‘청와대·국정원 정보 제공설’ ‘정권과 밀실 합작설’ 등의 보도 배경에 취재를 집중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창균 정치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은 ‘조선일보 음모론의 진실’(9월18일치)이라는 칼럼에서 이 보도가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들 간의 고공 플레이가 아니라, 취재기자들이 몇 주일 동안 구석구석을 파헤친 보병전의 결과물”이라고 반박했고, 28일치 사설에선 “사실 확인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음모론’과 같은 실체도 없는 정치 공방 중계방송 하듯 하거나 스스로 음모론을 창작하는 걸로 시종했다”고 비난했다.

다른 언론들이 조선의 지적을 경청할 대목도 분명 있다. 보도에서 ‘해석보다 사실이 중요하다’는 건 보도 종사자로서 아무리 들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조선이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타사를 비난하기에 앞서 자사에 제기되는 의문에 성실하게 답할 필요가 있다. 첫 단서를 어디서 얻었는지는 비밀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밝히지 못한다 해도, 그 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과 경과를 거쳤는지는 최대한 투명하게 설명하는 게 정도다. 이런 과정이 안갯속에 가려 있으니 음모론과 합작론이 춤추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편집 책임자의 소상한 ‘채동욱 취재 전말기’를 보고 싶다. 그것이 이런 유의 의혹 보도와 관련해 최근 국제적으로 확립된 ‘투명성 원칙’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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