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이후에도 혼외자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채 총장의 사퇴는 그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인 것으로 귀결되었다. 당사자들 간의 분쟁도 없는 상태에서 제기된 검찰 수장에 대한 혼외자 논란은 곧바로 고위 공직자의 처신에 관한 도덕성 문제로 환원되었으며, 고위 공직자의 사생활에 대한 ‘알 권리’ 차원으로 치환되었다. 사실 규명이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혼외자 유무를 밝히는 것이 사태의 본질인 양 치부되었다.
사태를 보는 관점의 문제다. 사실은 맥락과 연결해보지 않으면 의미 없는 파편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 그래서 제기되는 것이 이른바 ‘배후설’ 또는 ‘외압설’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청와대와 법무부 등 권력의 핵심과 대립각을 세운 것이 권력의 심기를 건드려 ‘통제’되지 않는 검찰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시나리오다. ‘배후설’의 관점이라면 ‘배후’의 의도대로 채 총장 ‘찍어내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복기해보자. 지난달 6일 <조선일보>의 채 총장 혼외자 보도 이후인 13일 법무부의 감찰 방침이 발표되고, 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법무부는 감찰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15일 청와대는 사표 반려와 함께 감찰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결국 감찰 사유가 안 되는 사안에 대해 감찰에 접근하지도 못한 법무부는 <조선일보>가 지목한 채 총장의 내연녀 임아무개씨의 진술도 확보하지 못한 채 탐문에 근거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 결과 발표에서 법무부는 혼외자 유무에 대한 결정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황만으로 채 총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부각시킴으로써 사표 수리를 합리화했다. 사실관계의 규명 자체가 중요하다는 관점에 서더라도 애초 사실관계의 핵심인 혼외자 유무도 가려지지 않은 채, 검찰총장의 사퇴로 마무리된 것이다. 애당초 채 총장의 카페 출입 등과 특정 언론사가 제기하고 있는 정황의 파편들로 이번 사안의 사실이 입증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번 사태의 정치적 해석이 배제되고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과 혼외자 유무를 둘러싼 사실관계 규명에만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만일 검찰이, 더 정확히 말해 채 전 총장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의 기소에서 권력의 핵심과 갈등을 빚지 않았으면 이번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이른바 ‘배후설’에 입각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이를 뒷받침할 논거는 사안의 속성상 흔쾌하게 제시될 수 없다.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외압설’은 정확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추론에 입각한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는 여권의 비판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혼외자를 숨겼다’는 단정적 보도는 결과적으로 정권의 핵심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던 검찰 수장의 사퇴로 연결됨으로써 향후 후임 검찰총장이 이끄는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채동욱 사태는 자연인 채동욱의 개인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검찰의 독립이라는 해묵은 숙제와 더불어 한국의 권력 지형의 현실과 한국 대통령제의 제왕적 측면을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과제를 남겼다. 혼외자 유무는 개인사로 남게 됐지만 만약 혼외자가 있었다면 이른바 ‘외압’의 주체와 실체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 ‘배후’가 만약 있다면 이는 민간인 사찰보다도 죄질이 나쁜 것이다. 외압과 배후의 존재 여부와 혼외자 사실 규명은 똑같거나 전자가 더 큰 무게로 다뤄져야 한다. 사실 규명은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당위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문제의 본질은 점점 희석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또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할 것 같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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