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검찰권 독립의 명분 아래 처음으로 검찰총장 임기제(2년)가 도입됐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권력기관 사이 파워 면에서도 안기부에 밀렸다. 검찰이 최고 권력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건 문민정부 이래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다. 법치의 명분 아래 정보기관의 역할과 목소리가 줄어든 덕분이다.
그러나 권한이 세진 만큼 바람도 많이 탔다. 1993년 취임한 김도언 총장부터 따져 14명의 검찰총장이 나왔지만 명예롭게 임기를 마친 사람은 손꼽을 정도다. ‘국민총장’이란 말까지 들으며 박수 받고 떠난 송광수 총장(2003~2005)이나, 무난하게 임기를 채운 박순용(1999~2001)·정상명(2005~2007) 총장 정도가 온전하게 살아나갔을 뿐 대부분 눈총 속에 중도 퇴장했다. 이명재 총장(2002)처럼 검찰 안팎의 기대 속에 취임했다가 피의자 폭행치사 사건 돌출로 10개월 만에 물러나 안타까움을 산 경우도 있지만 나머지는 역량 부족 또는 비리로 불명예 퇴진했다.
30일 사퇴한 채동욱 총장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사건(강정구 교수 구속 여부) 처리를 둘러싸고 정권과 갈등을 빚은 끝에 물러나는 모양새는 김종빈 총장(2005)과도 유사해 보이지만 사생활 논란이 빌미가 된 건 전무후무한 사례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파헤쳤다가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쫓겨났다는 점에서, 정권의 정치자금 문제에 칼날을 들이댔음에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송광수 총장과도 비교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임채진·김준규·한상대·채동욱 등 4명의 총장이 연속으로 중도하차한 건 임기제 도입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정권의 검찰 장악 시도가 집요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근 행태를 보면 그(채 총장)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4월9일치 ‘유레카’)던 예상이 들어맞은 건 ‘검찰 암흑시대’의 예고편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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