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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력과 조선일보의 ‘혼외정사’

등록 2013-09-24 08:52수정 2013-09-24 16:59

법무부의 감찰 지시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법무부의 감찰 지시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권력이 ‘씨’ 뿌리고 조선일보라는 ‘밭’이 키운 ‘혼외자 보도’
채동욱 총장의 민사소송은 ‘채동욱 대 권언유착’의 승부
[김종구 칼럼]

출생의 비밀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이쪽 채널을 틀어봐도 저쪽 채널을 돌려봐도 온통 혼외정사니 출생의 비밀이니 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의 홍수다. 심지어 최근 한 통신회사 광고에는 인기 주말드라마에 혼외부부로 출연한 탤런트들이 짝을 바꿔가며 나와 “데이터가 두 배”를 외치고 있다. ‘축첩 권하는 사회’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광고다.

<조선일보> 보도로 촉발된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은 출생의 비밀이란 소재를 드라마의 영역에서 뉴스 시간까지 확장한 의미를 지닌다. 시청자들은 출생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가 끝나기 무섭게 뉴스에서 또다시 똑같은 소재의 이야기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통상 ‘막장’의 성격을 지니듯 현실도 역시 막장으로 흘렀다. 아니, 드라마보다 훨씬 더 심하다. 시청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 있는데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기도 전에 드라마를 강제로 조기 종영하고 주인공을 쫓아내는 법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채 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을 제기한 기사야말로 권력과 조선일보의 혼외정사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는 기사의 유전자를 굳이 감식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학적부와 혈액형 등 국가기관이 개입하지 않고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내밀한 사생활 정보, 이 보도를 전후한 권력의 움직임 등 각종 정황은 권력과 조선일보 간 은밀한 교접의 의혹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보도의 ‘씨앗’은 권력의 것이고, 조선일보는 그 씨앗을 받아 키운 밭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공직자 내지 공직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 작업은 수없이 많았지만 권력과 직접 교감해 고위 공직자를 쫓아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결과에 반감을 품고 있던 이들이 의기투합해 검찰총장 혼외아들 의혹 보도라는 ‘위대한 전사’를 탄생시켰다면 가히 언론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작품의 자격이 충분하다.

이 전사의 탁월한 전투능력이야 이미 입증된 것이고, 그렇다면 본성은 어떤가. 과연 진실된 아이인가, 아니면 거짓과 어둠의 자식인가. 그 여부는 결국 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아이가 친자인지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채 총장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의 결과가 매우 궁금해지는 이유다. 사실 이 소송의 외적 형식은 ‘채동욱 대 조선일보’이지만 실질적 내용은 ‘채동욱 대 권력’이요 ‘채동욱 대 권언유착’이다. 따라서 그 결과는 단순히 채 총장 개인의 명예 문제 차원을 떠나 정치사회적인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친자 여부를 가리기 위한 유전자 감식이 실제로 이뤄질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만약 채 총장의 친자로 판명나면 권력과 조선일보 간의 은밀한 접촉 의혹은 그대로 넘어갈 것이다. 아동의 사생활이나 인격, 존엄성의 유린 문제 등도 외면당하고 묻힐 것이다. 그리고 채 총장은 축첩인사에 거짓말쟁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출생의 비밀을 다룬 역대 드라마 주인공 중 최악의 캐릭터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조선일보의 채 총장 혼외아들 보도가 허위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단순히 조선일보의 패배가 아니라 권력의 총체적 패배요, 권력과 언론의 불륜관계의 파탄을 의미한다. 청와대는 지금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강행해 다른 흠집이라도 찾아내려고 혈안이 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허물이 덮일 수는 없다.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무엇보다 우습게 되는 것은 우리 국가기관의 한심한 정보수집 능력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가정보원 등이 총출동해 현직 검찰총장의 뒷조사를 샅샅이 했는데도 결국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다면 이런 망신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이들 기관의 존폐 문제까지도 거론해야 할 상황이 된다. 만약 처음부터 그릇된 정보임을 알고 공작을 벌인 것이라면 죄는 더욱 무겁다. 그 후폭풍은 권력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심각할 수 있다. 권력이 그때 가서 이 위대한 전사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뒤꽁무니를 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진실이다.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한 사상 최대의 블록버스터 드라마는 이제 막이 올랐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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