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추석이 지나면 한여름 내내 괴롭히던 모기·벼룩·진드기 따위의 물것들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추석이 기다려지는 여러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물것의 횡포가 여지없이 줄어들었으니 계절의 순환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한데 추석 연휴도 줄여가며 발행한 신문들을 보니, 신종 전염병의 습격을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사찰이란 이름의 벌레와 그것이 퍼뜨리는 공포란 이름의 전염균인데요,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벌레의 특징은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엿보고, 엿듣다가는 슬그머니 뒤통수를 물어버립니다. 때론 페스트를 옮기는 들쥐같이 약삭빠른 매체를 통해 병균을 대량 확산시키기도 하지요. 사실 벌레보다 무서운 건 공포라는 균입니다. 일종의 감염균인데, 비단 감염된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를 보고 또 그에 관해 듣는 것만으로도 감염이 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입니다. 이 벌레와 균은 사정기관이란 곳에서 배양한다는데요, 지금 공직사회뿐 아니라 사기업, 일반 가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겁니다. 새 대통령을 모신 지 몇 개월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착잡합니다.
인터넷 매체 <노컷뉴스>는 오늘 아침 ‘청와대의 ‘채동욱 대응’에 공무원들 ‘식은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감찰이든 사찰이든 원치 않는 공직자나 눈밖에 벗어난 공직자를 찍어내기 위한 사정기관의 비수가 누구에게나 날아들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번에만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이란 불법 조직을 총리실에 만들어놓고, 공직자는 물론 선출직 공무원 그리고 민간인까지 사찰을 해 청와대에 직보했습니다. 대상 중엔 ‘박근혜 의원’도 포함돼 있었죠.
그러나 지금 기어다니는 벌레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과거 독재정권의 정보기관이 캐내려던 두 가지 주요 사찰 대상이 돈과 이성관계였습니다. 돈이야 뇌물수수 등 범죄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해도, 이성관계는 사찰하는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범죄를 캐는 것과는 무관하게, 상대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을 들춰보고 악용하려는, 그 자체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찰하는 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폭로를 해도 오히려 역풍의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돌아다니는 벌레는 그런 두려움 자체가 없는 ‘좀비형’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것과 차원을 달리합니다. 극성했던 유신과 5공 정권에서도 사실 이성관계를 엿보기는 하되 악용하는 데는 매우 신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생 정권은 그런 신중함이나 두려움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찰총장까지 뒷조사해 의혹 수준의 내용을 마구 폭로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전 독재자들은 본인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주저했거나 너그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갓 스물 지난 여대생들을 앉혀 놓고 술을 마시다 변을 당했습니다. 그의 문란한 사생활 의혹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부인도 이 문제로 속을 무던히도 끓인 것으로 세간엔 알려졌습니다. 중앙정보부에 채홍사 구실을 하는 직책까지 있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른 몇몇 신문은 채 총장에 대한 별건 감찰 혹은 신상털기 가능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법무부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감찰 자체가 위법한데다 친자 확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찰을 억지로라도 하는 목적은, 채 총장을 먼지털기식으로 털어 도덕성에 상처를 내겠다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수 없는 거죠. 현직 검찰총장이 뒤로 사찰당하고 앞으로 감찰당할 정도면 어떤 공직자가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눈치 빠른 홍준표 경남지사가 이번에도 ‘오버’했습니다. 그는 채 총장이 감찰을 거부하고 사표를 내자, “나는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가지 않는다. 검사는 돈과 여자로부터 자유로워야 소신을 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공직자의 축첩은 사생활이 아니라 범죄”라며 “대한민국 검사들이 채 총장 사건을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역설했죠. 채 총장을 축첩한 자, 카페 여주인을 접대부로 비하한 것이었습니다. 야비한 사람입니다. 이런 언어폭력이 한두번이 아니어서 놀랄 일은 아니지만, 윗분에게 한 접시 말아 올리는 ‘순간포착’ 능력만은 절묘합니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이런 그의 발언에 쓴웃음만 짓더군요. 검사 홍준표가 친구들 돈으로 카페에 가서 마담 옆에 앉혀 두고 술 한번 안 마셨다고, 빨간 팬티의 홍 검사가? 다음 반응은 ‘뭐 께름칙한 게 있나?’였습니다.
스스로 단속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공포의 순기능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타인을 엿보고 엿듣는 것은 범죄라는 기본부터 염두에 두십시오. 그리고 효나 애국처럼 법으로 강제하지 못하는 도덕과 윤리의 영역이 있는 것처럼, 도덕과 윤리로 강제할 수 없는 영역(취미·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개인이 취미와 감정의 영역까지 자기검열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사회는 거대한 히스테리 병동이 되고 말 것이고, 님이 입에 달고 사는 미래, 행복, 창조 등 모든 가치있는 것들이 죽어버린 사회가 될 겁니다.
아버지는 치마의 길이, 머리카락의 길이까지 단속했습니다. 그렇다고 딸이 타인의 관심사, 애정 등에 관해서까지 단속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더욱이 엿보고 엿듣고, 흘리고 뒤통수치는 방식으로 해선 안 됩니다. 비명에 간 아비의 불행한 전철을 왜 따르려 합니까. 본인은 몰라도 국민들까지 왜 불행에 빠뜨리려 합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