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외국 출장 일주일만 다녀오면 (뉴스를 따라잡지 못해) 대화에 끼기 어렵다는 나라 대한민국. 지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가지 유념할 것은 빅이슈 자동연발 시스템의 총구가 내곡동에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이석기
‘이석기와 친구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집단이라는 점은 익히 드러난 사실이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들의 도저한 비현실적 인식이었다. 몸은 2013년에 있지만 정신은 1980년대에 두고 온 사람들 같았다. 나는 그들이 ‘냉전시대의 화석’이 된 원인의 상당부분을 국가보안법과 국가정보원이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들을 보안법으로 때려잡지 않았더라면, 역설적으로, 이들의 생명력은 진작에 끝났을 것이다. 이들이 믿고 따른다는 주체사상과 민주기지론은 햇빛 비치는 공론의 장에 올라서는 순간 재처럼 바스라지고 마는 뱀파이어처럼 허망한 것이다. 인삼밭의 차광막이 인삼에게 토양의 양분을 빨아들일 힘을 주듯, 시대착오적 주사파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차광막 아래서, 국정원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연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들을 절대 일망타진하지 않는다. 경찰이 마약사범이나 조폭을 일망타진하지 않고 적절히 관리하듯, 필요할 때마다 가끔 잡아들이며 재미를 볼 뿐이다. 보안법을 폐지하고 국정원의 수사 기능을 폐지하는 일은 안보 장사꾼들의 먹거리를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필수적인 과제다. 요컨대 이석기 사태는 표현의 자유의 ‘과잉’이 아니라 ‘결핍’에서 비롯한 일임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
#채동욱
‘촛불총장’이라는 조어를 처음 접한 것은 자칭 ‘애국세력’의 서초동 검찰청사 앞 집회에서였다. 내 식으로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검찰총장이, 왜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에 열심이냐는 것이다. 저열하기 짝이 없는 진영논리다. 만약 검찰의 기소가 무리한 것이었다면 채 총장은 진작에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안보 장사꾼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예의 <조선일보>가 나섰다. 나올 때까지 턴다는 일명 ‘개인별 맞춤형 표적 보도’ 무기를 발사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채 총장이 눈엣가시처럼 밉겠지만 쉽게 밀어내긴 어려울 것이다. 그건 채동욱이 그냥 총장이 아니라 한상대 다음 총장이기 때문이다. 한상대가 누구인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진상하고 개인적 의리로 양형을 조작한, 그리고 거기 맞서는 부하 간부에 대한 보복 감찰을 지시해 조직을 말아먹은 사상 최악의 총장이다. 한 총장 시절 검찰은 공중분해 위기 직전까지 몰렸다. 정권이 미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을 제치고 채동욱이 총장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검찰 조직 자체의 생존 논리가 있다. 여기 맞서려면 굉장한 홍역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국정원이 채동욱 총장 혼외자식 보도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대선개입, 엔엘엘(NLL), 이석기, 채동욱에 이르기까지 지난 대선 이후 대한민국을 뒤흔든 빅이슈의 중심에 국정원이 있었다. 특히 원세훈의 국정원이 은밀히 암약했던 반면, 남재준의 국정원은 거침없이 전면에 나서 플레이어임을 자처하고 있다. 마치 박정희 시대의 중앙정보부를 보는 것 같다. 아버지처럼 통치하고 싶은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 6개월은 국정원으로 시작해 국정원으로 끝났다. 국가경쟁력은 1년 새 6단계, 2007년에 견줘 14단계나 추락했다.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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