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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훔쳐보기 / 김사과

등록 2013-09-01 19:13

김사과 작가
김사과 작가
몇 달 전 4년 만에 제이지의 새 앨범이 나왔다. 그는 미국 슬럼가 출신으로 뛰어난 힙합 가수이자 성공한 흑인 비즈니스맨이다. 그의 성공담을 담은 책은 <제이지 스토리-빈민가에서 제국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번역까지 되었다.

새로 나온 앨범은 이런 그의 화려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첫 곡부터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너바나의 히트곡 후렴구를 읊으며 대중들의 변덕에 대해 엄살 섞인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이어지는 노래에서는 제프 쿤스와 프랜시스 베이컨을 들먹이며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다가 급기야 자신을 새로운 바스키아로 선언한다.

앨범을 끝까지 들은 뒤 든 감상은 지나치게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 행복해 돌아버린 사람의 샴페인에 전 헛소리를 한 시간 동안 들은 느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엄청나게 성공했고 부자이며 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힙합 음악사에 남을 앨범들을 냈고, 그 결과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으며, 비욘세를 아내로 두었다. 그런 그에게는 지나치게 성공한 스타들이 가지곤 하는 자기 파괴적인 면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완벽한 세계,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산다. 당연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다. 그의 비현실적인 삶이 너무나도 리얼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천국과 성배와 테이트모던 따위 화려한 단어를 통해 묘사되는 그의 삶이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확신하는 것은 물론 에스엔에스(SNS) 덕분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 유명 인사들의 삶을 즉각적이고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유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전시하고 또 사람들이 그것을 훔쳐보는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동화 속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며 그런 세상을 현실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물론 유명 인사들의 일상만이 전시되고 훔쳐보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시하고 전시된 타인을 훔쳐보는 식으로 관계 맺기를 하기 시작했다. 좀더 훔쳐볼거리가 많은 사람은 인기인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만족한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감수성은 호기심과 부러움 그리고 감탄이다. 물론 그 뒤에는 외로움이, 시기심과 스스로에 대한 초라함이 있겠으나 그것들은 은밀하게 감추어져야 한다. 그런 비틀린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열등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극도로 혐오하기 시작했다. 하여 남은 것은 동화 속 삶을 살고, 또 찬미하는 스타들과 그것에 대해서 백치처럼 감탄하며 ‘좋아요’ 버튼을 눌러대는 구경꾼들이다. 사실 그런 백치 짓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화면 속 주인공을 나와 완전히 다른 종족으로, 일테면 고대 신화 속 신들로 간주하면 된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어쩐지 못마땅하고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멋대가리 없는 무신론자의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내가 구식 인간이라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확신하건대, 인간 유전자 구조에 결정적인 변형이 가해지지 않는 한 이 구닥다리 감수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요즘 세상이 무서워서 다들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다만 이렇게 꼭꼭 숨어버린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이 어디서 어떻게 고여 썩어가고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고 또 무섭다.

김사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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