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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녀’라는 표현이 불편한 이유 / 김류미

등록 2013-06-02 19:27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개똥녀, 압구정 가슴녀, 개념녀…. 최근 몇 년 동안 이슈가 되는 일반인 여성을 두고, 사람들은 ‘○○녀’라 불렀다. 방송에 나와 “180㎝ 이하는 루저”라는 발언을 했던 일반인 패널은 ‘루저녀’라고 불렸다. 이렇게 해당 여성을 조리돌림하고 나면 신상털기가 이어졌다. ‘○○녀’는 인기 있는 낚시 콘텐츠가 되곤 했다. 지난해 어느 온라인 매체 서평 기사에 언급된 ‘압구정 가슴녀’는 주말 동안 검색어 1위를 했지만 해당 기자가 만들어낸 실체 없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실시간 검색어를 가지고 기사를 쓰는 대부분의 매체들은 ‘압구정 가슴녀’로 기사를 써야 했고, 최근엔 정말 이 표현을 사용해 활동하는 연예인도 등장했다.

왜 어떤 여성들은 타자화되는가? ‘○○녀’라는 표현은 주로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담을 때 사용되었다. 욕과 달리 ‘○○녀’ 자체는 비속어가 아니다. 다만 대상을 ‘철저히 그 성별을 가진 대상’으로 제한함으로써 (주로 이런 표현을 쓰는 남성들로부터) 대상화될 뿐이다. 한국에서 성별은 사람을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구분하는 성질인 동시에 공식적인 영역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영역’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선거운동 당시 ‘여성 대통령’의 특별함을 그리 강조하지 않았고, 지지 세력들 역시 유권자들에게 ‘대통령의 성별’을 인지시키려 하지 않았다. 당선 뒤에야 ‘여성 대통령’의 대통령 관저 생활에 관한 호기심이 섞인 기사들이 나왔다.

‘개념 연예인’이라는 표현은 ‘연예인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편견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개념녀’라는 표현은 주로 ‘안 그렇게 생긴 예쁜 여성이 투표 독려 같은 역시나 예쁜 퍼포먼스를 벌일 때’ 쓰인다. 결국 ‘○○녀’란 ‘크게 주체적이지는 않으나 대체로 얌전해야 하는 어떤 여성상’에 반하는 행동들을 했을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그리고 이 시선의 전제는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라는 편견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남’이라는 표현은 많이 사용되지 않는가? 확률적으로 남성들이 더 사건을 벌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 흔해서 도마에 올라오지 않는다. 남성에게는 애초에 ‘다양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촛불집회 당시 거리에 등장했던 것은 ‘촛불 소녀’만이 아니었다. 촛불 소년도, 촛불 여대생도, 촛불 엄마도, 촛불 아저씨도, 촛불 가족도 있었다. 누가 왜 ‘촛불 소녀’를 띄우는가?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칭된 주체들이 ‘그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사회를 향해 계속적으로 발언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블로그를 할 때 가끔 소위 ‘의식 있는 글’을 쓰고 나면 친근함과 호의를 담아 “한번 보자”는 말을 듣고는 했다. 번개를 하고 돌아오면, 기대했을 상대에게 ‘안 예뻐서’ 참 미안했다. 학벌 좋고, 좀 예쁘고, 발랄하고, 정치의식을 가졌다면, 그 판에서는 너무 쉽게 ‘아저씨들의 아이돌’이 되고는 했다.

이른바 진보 매체들이 ‘○○녀’를 언급할 때, 나는 어린 시절 남자애들이 “○○년아”를 욕으로 사용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남자들끼리 상대를 여성으로 지칭하는 것이 욕이라는 걸 그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제 나는 같은 정서를 일베를 비롯한 여성을 성적으로 쉽게 대상화하는 게시판들에서 만나곤 한다. 이 수치심을 설명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폭력임을 이들이 정말 모를까?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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