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전까지 5.5%대를 유지하던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7.8%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엠에프’는 극복했는지 몰라도 실업 문제는 더 심해졌다. 고용 동향에 따르면 1월의 청년실업률은 7.5%다. 수치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낮은데, 이는 지금의 고용 동향이 비취업 통학자나 구직 단념자를 전혀 포함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88만원 세대>가 출구 없는 승자독식 시대를 예언한 것이 5년도 더 전 일인데, 당시 20대의 반은 이제 30대가 되었고, 사회에 진입하지 못해 ‘유예된 청춘의 연장’은 진행형이다.
문제는 청년실업과 관련된 다른 문제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정말 ‘실업’만이 문제라면, 승자독식의 결과일지라도 취업이 되는 순간 특권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 먼저,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1~3년차 ‘직장인 사춘기’를 겪는다. 일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겪는 혼란스러운 정신상태와 방황을 말하는 이 용어는 과도한 스펙사회의 필연적 결과다. 기업이 ‘선발하기 위해 제시한 요건’들은 탁월하나, “정작, 실무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태도, 눈치, 감각, 단순 업무에 대한 근면함, 실무 감각 등 다른 기술을 다시 훈련해야 한다. 후자만이 요구되는 사회라면 생기지 않았을 ‘자의식’이 이미 스펙 사회를 뚫고 나오는 순간 생겼는데 말이다. 배운 것과 하는 일의 괴리를 이기지 못한 인재들은 학교로 대학원으로 돌아가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회사를 때려치운다.
둘째 문제는 어디나 넘쳐나는 공급을 감당할 수 없는 시스템이 돼간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기존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역시 우리 나이대의 자식을 둔) 절박한 베이비붐 세대들과 의자놀이를 해야 한다. 얼마 전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보좌사제 기간 장기화에 대한 전체회의’를 열었는데, 교구 내 본당(229개)보다 사제(796명)가 많아서 본래 주임사제가 되기 전 준비기간인 보좌사제만 15년씩 하는 사제들이 생겨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른 종교계에서도 나이 든 성직자들이 소수의 수도권에 있는 보직을 맡고, 열정 있는 젊은 사람들은 지방 산간 지역으로 배치되거나 자원한다. 우리 세대가 들어가 있는 거의 모든 업계가 이 모양이며 힘들지 않은 판은 없다.
셋째, 우리에게 정규직은, 혹은 정규직 전환이라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는 ‘그저 감사히 견뎌야 할 숭고한 것’이 된다. 최근 어느 대형 출판사에서 공채를 했는데, 지원이 예상보다 넘쳐나자 의무감에서 애초 목표 인원보다 많은 신입직원을 뽑았다고 한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이 출판사는 신입을 뽑지 않는 업계에서 큰 몫을 한 셈이 된다. 이건 채용되는 쪽도 마찬가지여서, ‘그저 감사히 일하겠습니다’가 된다. ‘노동 소외’를 느끼는 것은 노동자가 되어서가 아니다. 이미 서비스업의 알바를 하며 ‘내 시간 가치보다 비싼 물건’을 팔았던 우리는 노동자의 자의식을 가질 수 없다.
‘나는 특별하다는 사춘기의 심리가 20대가 되어서도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 ‘중2병’과 ‘직장인 사춘기’는 지금 ‘멘붕사회’를 설명하는 탁월한 언어가 아닐까. 세대론 칼럼을 늘 쓰면서도 ‘우리가 힘들어요, 징징’이 될까 염려스럽고 “그래서, 어쩌라고?”에 답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 우리는 모두 망해가고 있고, 다른 사회를 만들지 않는 한, 미래를 살게 될 우리의 후배들에게는 더 힘든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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