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자유기고가
대선 패배 이후 야권진영에선 이른바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의를 적극 소개하기 시작했다. 권력교체에 대한 희망이 고조되었던 대선 이전에는 ‘복지국가’ 담론이 줄을 이었던 것과 다소 대조적이다. 물론 대선 이전에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국내 여러 매체들이 앞다투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미소금융 등 사회적 경제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국제연합(유엔)에서는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했으며 이러한 국내외적 추세를 반영하듯 지난해 국회에서는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었다.
보수진영도 사회적 경제에 나름대로 주목하고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는 최근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들을 특집으로 연재했고, <매일경제>도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의 영역이 불황기에 실업을 ‘흡수’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소개했다. 이는 경제민주화와 자본주의 4.0을 필두로 해서 장기불황의 시대에 좀더 ‘따뜻한 시장경제’를 지향하겠다는 보수파들의 공언과 잇닿아 있다. 물론 어떤 의제에 대해 일정한 좌우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합의 이면에 숨겨진 ‘적대’가 무엇인지를 징후적인 방식으로 읽어내야 한다.
문제는 현재 사회적 경제의 역할과 의의에 대한 논의가 무비판적으로, 중구난방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물론 그 의도는 불순하지만) 지난해 보수 일간지에 실린 한 칼럼이 협동조합에 관해 좀더 현실적이고 ‘정직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19세기 중엽 시장경제의 경제적 약자들이 모여 협동조합 경제를 시작한 지 150여년이 지나면서 협동조합은 기업경제나 공공경제가 아닌 제3의 경제로 자리잡았다. 치열해진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동조합 간 합병과 연대를 통해 규모화·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중략) 경제사업체로서 자리를 확보했다.” 말하자면 오늘날 유력한 대안으로 일컬어지는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들은 자본과의 경쟁에서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을 수용하거나 국가지원을 받으며 ‘살아남은’ 것들이다. 그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초기 정신은 변질되고 자본과 국가의 기능을 보완하는 것에 머물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에 대한 대다수의 논의들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길 꺼린다.
드물게도 <프레시안>에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을 냉정하게 비판한 한형식 당인리 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의 문제제기대로 ‘어떤’ 협동조합, ‘어떤’ 사회적 경제인지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와 자본의 테두리 내에서 그것이 갖는 한계 역시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아마 좌우보혁 양자에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상하리만치 급작스러운 의제 수렴이 일어난 것은 국가와 자본 자체의 ‘지양’을 제안하는 급진적 전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의 다른 이름인 제3의 경제라는 표현은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위기에 처한) 자본과 국가의 지배를 보완하는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함축한다. 최근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라, 국가-자본-네이션을 의심하라”라고 제안했다. 이 말을 여기에 대입하자면 “사회적 경제를 의심하라”가 되겠다. 그 역시 대안화폐와 협동조합을 옹호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과 네이션-스테이트를 지양하는 한에서 급진적 전망을 가질 수 있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한겨레 인기기사>
■ 민주 “이동흡, ‘항공권깡’까지…점입가경”
■ 정미홍 전 아나 “박원순 이재명 종북주의자” 트윗 논란
■ 순회 강연 나선 표창원, 대구서 영남인에 ‘쓴소리’
■ ‘지명수배’ 이광은 전 감독 한달째 행방 묘연
■ 김동률 “추억 팔지 않고 새 음악 할 용기 얻었어요“
■ 민주 “이동흡, ‘항공권깡’까지…점입가경”
■ 정미홍 전 아나 “박원순 이재명 종북주의자” 트윗 논란
■ 순회 강연 나선 표창원, 대구서 영남인에 ‘쓴소리’
■ ‘지명수배’ 이광은 전 감독 한달째 행방 묘연
■ 김동률 “추억 팔지 않고 새 음악 할 용기 얻었어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